크리스마스에는 해피엔딩
그만 놀고 싶어. 최소 터울이 두 살 이상 어린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에게 집콕 육아 어렵다며 가벼운 농담으로 던졌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아이가 1초도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화장실도 혼자 가지 않고, 엄마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거나 문을 열고 있으라고 한 뒤 문 앞에서 서성인다.
여섯 살인데.. 곧 일곱 살 되는데..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다. 뿐만 아니다. 짜증내고 짜증내고 더 짜증낸다. 양치질하자 씻자 밥 먹자고 하면 빽 소리부터 지른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에게 짜증을 많이 냈나, 남편에게 하는 모습을 배운 건가 (근거 있는) 추측을 하며 반성도 했더랬다.
갈수록 육아가 힘들다. 가정보육이 힘들다 해도 단순히 코로나 (블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서 지난 주말 육아서를 한 권 빌렸다. 육아서적이라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게 읽었지만 정독하며 벅찬 마음으로 책장을 덮어도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따라 해 보며 잘되지 않는 모습이 싫고 최근에는 억지스럽기까지 하여 나라는 엄마의 한계를 그었다. 편하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짜증, 우울, 무기력이 몰려왔고 자주 욱(분노)했다. 애쓰면 다스려질 줄 알았던 감정, 둑이 터진 듯 쏟아져 내렸다.
<푸름아빠 거울육아>는 변화만이 살 길이라며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빌려온 책일까. 아침에 일어나 울부짖으며 엄마를 찾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100페이지를 단숨에 읽었다.
희생과 헌신은 다르다. 희생은 참는 것이기에 보상을 바란다. 이만큼 해주었으니 너도 해야지? 무언의 압박이 들어간 것이 희생이다. 헌신은 무조건적으로 주기에 주어도 주어도 기쁘다고. 감정을 숨긴 채 ‘척’하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생각과 감정을 숨겼다 생각했는데 몸(뉘앙스, 태도)은 아니었던 거다. 이중적인 메시지를 기가 막히게 포착하는 아이들. 책 속에서 아이들이 부모의 내면 아이를 대신 표현하는 게 마음 아팠다. 나의 아이도 나 대신 짜증 내준 걸까. 그러지 말고 제대로 표현해요! 하고.
분노의 모습을 설명한 구절을 읽으니 여태 여러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서도 말끔하게 떨어지지 않았던 실마리를 찾았다. 분노. 단어조차 떠올리기 거북하여 무의식으로 억압한 그 분노. 지질한 나의 모습 - 존재가 아닌 일부분 - 을 인정하자 무기력해졌다. 책을 읽기 전 일주일 동안 아이와 함께 9시간씩 잤던 무기력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책을 덮고 눈을 뜨니 일주일 아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지난 것만 같다.
아이와 노는 게 이토록 힘든 엄마. 하지만 아이가 부모의 어린 시절 아이와 놀아준다는 말은 떠올리기만 해도 코끝이 시린 것을..
아들. 내게 기적을 선물해줄래?
엄마가 사랑을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