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아이를 키운다는

by 다애



이리오라고 하면 오던 아이는 약속한 마지막 그림책이 끝나갈 즈음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하나만 더~를 외친다. 산타 (엄마)가 포장해 놓은 선물을 뜯고 오붓한 저녁식사까지, 나름 아이에게는 즐거웠을 하루의 끝을 눈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데. 크리스마스니까. 원하는 책 한 권을 더 읽고 자정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진 걸 확인한 후에야 안도했다. 습관처럼 휴대폰에 손을 뻗어 멍 때리듯 피드를 확인하다 늦게 잠들고 아이와 비슷한 시각에 일어난 지 10일째던가. 키즈노트로 출결상황을 보니 아이는 2주째 결석 중이다.



자기주장을 감정으로 뱉는 아이를 보며 기억의 필름을 되감는다. 주변을 살피면서. 남편, 시댁, 친정... 주의가 온통 아이로 향했던 육아. 아이만 잘 키우면 되는 줄 알았거늘. 아이만, 봤구나. 사랑 그 자체인 아이가 온몸으로 알려주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요. 내려놓아요. 마음을 열고 사랑해 주세요.’ 가끔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한다. 만약 아이가 없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같은 깨달음 얻으며 살 수 있을까. 깨달은 게 맞긴 한 지도 모르겠지만.






아이 요구는 엄마의 요구로 미뤄진다. 다시 이어지는 요구는 또 다른 요구로 대체된다. 결국 끝은 타협. 원껏 만족하는 상황은 둘에게 오지 않으며 온다면 그건 찰나이고 지속되지 않는다. 원했던 상황이 아닌데.. 후에 삶의 고단으로 힘겨울 아이에게 지금의 놀이를 양보하는 게 옳은가.




잘 키우고 있다는 오만을 깨고. 지난날 긍정적인 오해로 가득 찼던 스스로를 지금은 부정한다. 육아란 대체, 무엇인지.. 아이를 키우거나 어릴 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도 아니고, 함께 행복을 찾아가는 미션은 더욱 아닐 테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오늘 쓰는 육아에 대한 편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