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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Jan 03. 2021

드라이브



오늘은 어디 갈래. 외식도 모임도 자제하지만 전보다 늘어난 외출. 초반에는 장난감, 교구, 책을 들였으나 한계가 있다. 돈 때문만은 아니고. 그걸 할 시간도 부족하다. 하루 종일 놀 수 없이 해야 하는 집안일이 있다고, 이야기하게 될 줄이야.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지 못한 진실을 한꺼번에 털어놓고 있다. 처음엔 미안했지만 그리만 생각지 않기로 했다. 부족한 엄마의 모습과 현재 상황을 함께 받아들이려니 시간이 걸리지만 천천히 이해하는 과정이겠거니.. 긴 글 네 권 읽기로 한 약속을 깨고 바꿔온 글밥 적은 두 권 중 마지막 책을 (글을 모르는) 아들이 읽어 주는 목소리에 잠들 뻔했으니 말이다.




나가자. 아빠에게 향한 아이의 끝없는 애정 공세에 대한 답을 아이가 아닌, 설거지하고 세탁이 끝난 빨랫감을 옮기던 내게 던졌다. 안 나가면 뭐 할까. 힘든 운전 직접 하겠다 하니 아이를 준비시켜 밖을 따라나섰다. 인원을 축소하여 운영하는 체험센터에 들어갔다 (전화받은 남편 말로는) 금방 나오니 등산복을 입은 중년 남녀가 보였다. 벌써 하산인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산을 바라보니 겹겹이 쌓인 산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장관이다. 산을 오르려면 일찍 와야겠지. 아이를 뒤따르며 광장을 크게 한 바퀴 도니 사람들은 온데간데없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등산하자!”는 아이말에 부츠를 신어서 안되노라고 그럴듯한 변명으로 응수하고는 차에 탔다.




어디로 갈까. 밥을 든든히 먹고 간식까지 챙겨 먹은 터라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맛집을 검색하다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들이밀었다 퇴짜 맞았다. 또?? 메뉴 선택권을 쥐어주고는 의견 낼 때마다 거부당하면 기분이 별로다. 좋아하는 국밥 먹으러 가자고 빈정댔다가 또 퇴짜. 집으로 가는 게 아쉬워 툴툴대는 아이, 둘 다 왜 그러냐고 예민해진 남편까지. 조용히 노래도 없이 적막하게 달리다가 그냥,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무 말이나 하며 달리는 시간. 해 떨어지는 시각에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매번 집으로 돌아가던 때인데 느낌이 다르다.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남편이 아쉽다며 방향을 틀었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도착한 아파트 주차장. 손 씻고 옷만 갈아입고는 늘어진 자세로 아이와 함께 토이스토리를 보았다. 티브이 틀어주는 두 시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며 꾸역꾸역 무언가를 했는데. 자기 계발에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도 불안하지 않다. 예전처럼 게을러지면 큰 일 날 줄 알았더니 아무렇지도 않다.



드라이브라도 못하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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