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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Mar 18. 2021

감사일기

쓰기를 그만두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백 번, 아니 그보다도 더 말하고 쓴다고 했다. 그녀뿐만 아니었다. 팔로우하는 SNS에는 감사한 일들로 가득했다. 감사할 일이 뭐가 있을까.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럴 때는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로 감사일기를 쓰더라고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는 다른 친구가 알려주었다. 살아있으니 감사하지, 건강하니 감사하지. 일단 그런 마음은 들어서 "나로 살아서 감사합니다."로 쓰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키워보고자.





나로 살아서 감사합니다. 나여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줄짜리 감사일기 쓰기가 어려웠다.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면 힘이 빠졌다. 해는 이미 떠서 하루가 벌써 시작되었을 시각에 몸을 일으켜 거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치고 감사일기부터 쓰는 아침 일상. 한 줄로 끝나는 하루의 유일한 감사일기였기에 손으로 쓰는데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도 힘껏 썼다. 한 문장을 쓰는 게 그토록 힘들 줄이야. 진심이 도통 우러나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두 달여를 쓰고 그만두었다. 힘내라고 하는 말에 힘이 나지 않는 것처럼 감사하다는 글에 감사하지가 않았다. 믹스커피를 마시고 과자봉지를 뜯었다. 맥주도 마시고 안주도 씹었다. 드라마를 틀었다. 마른빨래를 개키면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봤다. 한때 클래식 FM을 들으며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고 기뻐했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흘러나왔다. 머리에 스마트폰을 달고 다니고 싶었다. (드라마를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그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보복 소비가 성행한다는데. 믹스커피도 끊고 맥주도 자제하고 건강을 생각하며 집밥을 해 먹으며 억누른 욕구에 대한 보복일까.





아들 친구 엄마를 만나 근황을 털어놓았다. 드라마에 빠져 살다 날짜를 세어보니 어느새 3월이 되었어. 이렇게 시간이 갈 것 같네. 갑자기 불안이 밀려왔다. 사실이었다. 감사하고 싶으면 감사한 마음이 들만한 일상을 살아야 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백번, 오백 번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매일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 무엇에 감사할지 찾는 일은 그만두고 집을 나섰다. 무슨 커피를 마시면 기분 좋을까. 쿠키를 먹으면 어떨까. 잠시 떠올렸다가 걸음을 이어갔다. 문이 활짝 열린 카페로 들어가 일단 주문부터 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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