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살던 집주인이 세입자를 위해 벽지와 바닥을 수리했기에 매수하고는 주방과 화장실만 손보고 들어왔다. 내 손을 거치지 않은 인테리어의 집에서 7년째 살고 있다. 집을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을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아이가 돌 때 칠한 한쪽 벽지는 울고 있고 맞은편 벽은 연초록의 잔잔한 꽃무늬 벽지다. 천정은 두 종류의 벽지가 불규칙하게 발려져 있다. 원래 있던 벽지 사이사이를 다른 종류로 메꾼 듯하다. 아일랜드 식탁에 가로막혀 주방에 입주하지 못한 냉장고는 화장실 문 옆에 자리 잡게 되었고. 거실벽에 처음 설치되었던 티브이가 안방으로, 그 빈자리에 조립되었던 책장은 아이방으로 옮겨졌다. 트레이를 사고 소파를 버리고. 장난감 정리함을 사서 여백을 만들면 책상과 의자가 공간을 차지했다.
가구를 옮기고 새로운 가구를 들여도 분위기는 변하지 않는다. 벽지를 떼고 페인트칠을 하면 어떨까. 셀프 인테리어를 검색했다. 부부 싸움 안 할 자신 있음 하세요. 그냥 업체 부르세요. 절대 하지 마세요. 눈에 띄는 문구는 이랬다. 물론 하고 나서 만족한다는 리뷰와 함께 깔끔해 보이는 인증 사진을 첨부한 이도 있었다. 인테리어 때문이다. 들어올 때 올수리로 인테리어를 했어야 해. 이사를 이야기하며 다음 집에는 벽지, 바닥, 몰딩(은 다 떼고), 새시를 무조건 하자고 했다.
날씨가 흐리던 지난 주말. 빨래 좀 널어달라는 두 번째 말에 성큼성큼 가져다 널더니 드레스룸에 있는 청소기를 작동시키는 남편. 주말 대청소를 시작하려나 보다 했는데 드레스룸에서 나오질 않았다. 남편 대신 잡동사니들이 하나 둘 거실로 밀려 나왔다. 일반쓰레기봉투에 넣기도 그렇고 재활용품으로도 분리 배출하지 못한 건전지가 들어가는 제품들. 작동 여부가 의심되는 USB, 출처 모를 볼트와 너트, 그 외 자잘한 물건들.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하라고 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잊은 정리의 시간이 찾아왔네. 조금 버렸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물티슈들은 주방 찬장 문을 열어 다른 물건들을 구석으로 더 밀어 넣어 자리를 만들어 주고,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르는 물건들은 베란다에 그전에 모아둔 잡동사니를 담은 검정 비닐봉지에 넣었다.
"집이 문제가 아니다." 볼멘소리를 하던 내게 했던 남편의 말이었다. 그래. 집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때그때 정리하지 못한 이유는 차치해 두더라도. 귀찮아서 대충 산 물건이 가져올 결과의 크기를 상상하지 못한 무지한 선택 때문이다. 내 스타일이 아닌 지금의 집을 떠나 다음 집을 만날 때 없던 취향이 생길 것인가. 없던 스타일이 갑자기 찾아올 것인가. 생각하는 스타일이란 것도 어떤 형태인지 모르면서 그저 '스타일' 운운하는 건 아닌지..
어제저녁으로 뭘 해 먹을까 고민하다 반 봉지 남은 훈제오리와 씻어 두었던 부추가 떠올랐다. 지난번에 찜으로 해 먹었으니 구워 먹으면 되겠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오리고기를 넣었다. 부추도 곧바로 넣고. 아참 부추는 오래 구우면 질겨진댔지. 넣자마자 든 생각에 곧장 빼냈다. 수많은 요리들을 거쳐 남은 데이터다. 인테리어도 그런 걸까. <좋아하는 집에 살고 있나요?>의 저자 친구는 이사 온 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 인테리어 중이라고 했단다. 집도 그런 걸까. 매일 뭘 먹을지 고민하고 내놓는 요리와 마찬가지일까. 삼시 세 끼를 차려내야 하는 요리에 비해 쌓이는 경험 속도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돈 주고 산 잡동사니를 버리고 다음에 들일 물건이 잡동사니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가구 리스트를 마구 클릭하면서 결재 버튼은 피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