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문제는 미래에게 맡기자
어린이집에서 아이 생일잔치를 하는 전날. 함께 축하받는 두 친구의 생일선물과 축하해 줄 친구들에게 건넬 답례 선물, 선생님이 강조하신 큰 사이즈의 케이크를 사러 아이와 하원 하자마자 길을 나섰다. 구매리스트를 떠올리기만 했는데 벌써 지친다.
킥보드를 타고 신나게 달려 나가는 아이. 좋은가 보네. 튼튼하고 커다란 장바구니에 담길 물건들의 무게를 재며 뒤따랐다. 이리 와. 얼른 건너자. 조심하고. 빨리. 도착한 문구점 입구에서 아이는 장난감 구경 삼매경이다. 어떤 걸 사면 좋을지 확실히 정하진 못했지만. OO이는 귀신같은 걸 좋아하니까 귀신 스티커를 사자. 오는 길에 아이가 추천한 스티커 선물이 순위에 올랐다. 한참 자기 물건에 꾸미길 좋아하니 괜찮을 것 같다. 며칠 전 좋아하는 캐릭터 스티커를 어린이집 가방에 다닥다닥 붙인 아들로 일반화하긴 그렇지만 아이가 얼핏 들려주는 이야기로 짐작하건대 친구들과 취향을 공유하고 그들만의 유행이 있는 것 같았다.
귀신 스티커는 찾지 못했다. 대신 스크래치 스케치북에 옵션으로 스티커가 있어서 이걸로 할까 물어봤더니 그보다 아이는 자기 장난감을 사고 싶은 눈치다. 캡틴 아메리카 사면 안 돼? 지난 주말 아빠와 단둘이 필기도구를 사러 갔다 스티커, 아이언맨 피규어를 사 왔는데 아이언맨을 대적할 상대가 필요했나. 다시 지쳤다. 설명하고 설득하며 아이를 훈육하는 대신 원껏 담아 플렉스 하면 서로 좋지. 그 순간에는 말이다.
엄마 원하는 대로 한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한다니... 상대는 일곱 살 아이. 감정싸움할 상대가 아닌 걸 알면서도 아이와 가장 많이 감정싸움을 한다. 방목하듯 키워놓고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니 아이도 답답할까. 세 살에 몰랐지만 일곱 살 아이도 모를 수 있는 건데.
결국 캡틴 아메리카 종이 코스튬을 샀다. 문구점, 마트, 빵집을 돈 험난한 여정에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저녁 메뉴로 결정한 닭곰탕 하는 데 걸릴 시간을 계산하니 아찔하다. 감정 소모할 미래를 간접 체험하고 바로 앞 편의점으로 가서 삼각김밥, 짜장, 보리차를 결재했다. 아이가 먹자고 하기도 했다.
짐을 지고 걸어오니 도착한 우리 집. 옷 벗고 손 씻자는 말을 여러 번 하고 친구들 선물 포장을 시작하니 아이도 옆에서 코스튬 박스를 찢어 옆에서 꼼지락 댔다. 미리 포장해 놓았으니 되었다. 코스튬이 내심 궁금해 아이를 봤는데. 돌돌 말린 종이를 펼치다가 반이상 찢어놓았다. 대체... 이... 종이를 6,500원이나 주고 샀다니! 육성으로 말했다. 다 찢어 놓으면 어떡해. 택배 박스 뜯듯이 벅벅 뜯으면 안 되는 거라고. 더 이상 할 말은 나오지 않고 인상을 쓰고 있으니 아이가 테이프를 찾았다.
테이프로 붙이면 되지 뭘 걱정해.
이때 정신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처음부터 피규어를 샀으면 어땠을까. 지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대신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색칠하고 빳빳하게 펼치려 책을 덮고 그 위에 서서 짓던,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정을 볼 수 없었겠지. 그래도 어찌 되었건 체력소모는 하는 거겠지. 걱정은 해봤잖가. 그리고, 많이 해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