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라도 좋다
며칠에 하루 몰아서 하던 정리를 매일 한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늘어난다. 최근 아이 생일로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과 아이 아빠가 큰 맘먹고 지른 닌텐도가 최근의 추가된 물건 리스트. 서랍장 구매에 대한 고민은 시작도 전에 관둔다. 총량이라도 유지하고자 늘어난 물건 대신 있던 물건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릇이 너무 많아. 질리면 돌려 썼는데 그마저 감흥이 없다. 예쁜 그릇이긴 한데 애정이 없다. 정리의 여신 곤도 마리에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고 했다. 신혼 초에 샀던 물건들에 싫증 나거나 취향이 변해버리기도 하는데 애초에 내 의지로 선택해서 산 게 없다. 처음부터 설레지 않았다.
취향이 아닌 무늬의 접시들을 당근마켓에 내놓았다. 네 명 중 처음으로 연락 온 사람이 받아가기로 해서 신문지로 싸서 플라스틱 통에 차곡차곡 쌓았다. 플라스틱 통도 뚜껑이 부서져 갈 곳 잃어 분리수거할 참이었는데 잘됐네. 아깝다고 함께 내놓지 않은 도자기도 내놓을까. 점점 대담해진다. 물건을 비워내니 홀가분하다. 공간의 여백이 마음에도 영향을 끼친다. 실은 나만 안다. 찬장을 다 열어 내놓을 그릇을 꺼내어 두고. 한 장의 사진에 그릇의 개수와 무늬를 볼 수 있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주변의 어지러운 부분은 나오지 않도록 자세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약속한 시각에 오면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아침에 신문지로 돌돌 싸서 중문 앞에 두었다. 문이 꼭 닫힌 찬장을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나만이 알 수 있는 홀가분함이다.
어제 아이와 함께 장난감을 정리하며 깨끗해진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햇볕에 바짝 말랐을 예감이 드는 빨랫감이 개운함을 준다. 저걸 걷어서 외출한 사이 세탁된 젖은 옷을 건조대에 널어야 하는데. 그다음엔 쌓인 수건과 옷가지들을 차곡차곡 개켜야겠지. 저녁이 되면 지금처럼 무신경하게 걸어 다닐 수 없게 될 테다. 바닥을 보며 나노 블록, 몰펀, 레고가 만드는 빈 공간에 발 디딜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30분 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서 있던 버스 정류장 맞은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미끄럼을 탄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지만 즐거워 보인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벚꽃이 무수히 흩날린다. 개의치 않고 노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꽃잎들이 비스듬히 떨어져 간다.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사고는 정지되고 넋 놓고 바라보다 황홀해졌다. 찰나다. 잠시 만끽할 수 있다. 그럼 되는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고. 지금도,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