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시간 뒤에 따르는 숨 쉴 여유
집에 물건이 많다. 수납공간이 모자란다 해도 그 물건 담을 서랍장을 사는 것보다 물건을 비우는 게 더 현실적이다.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날씨가 따뜻해진 듯하여 아이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짧은 웃옷과 바지가 담긴 통도 꺼내와 옷방 문 앞에 자리를 잡고 하나하나 펼쳐보았다. 올해 입지도 못하지만 남에게도 줄 수 없는 옷을 분류했다. 반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두 아이를 거쳐 이미 사용감 있던 옷을 입고 아이는 놀이터를 종횡무진하며 배를 대거나 등을 대고 자유자재로 미끄럼틀을 탔다. 매년 친구 아들에게 옷을 물려주었는데. 작년에 옷을 주고 한참 지나서야 미안했다. 너무 더럽지 않으면 물려주자는 생각에 두 봉투를 담아 건네주었는데 (받을 때부터)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준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망설임 없는 손놀림으로 옷을 정리하니 버릴 옷이 5L 정도 되어 보였다. 그래, 버리자. 깔끔해진 옷장 문을 닫고 방을 나왔다.
아까워서 언젠가 쓸 그릇들은 다른 주인을 찾아주자. 그릇 42개를 당근에 내놓았다. 반씩 나눠서. 출처 모를 그릇들은 드림하고 도자기는 5천 원을 받기로 하고 올린 지 하루 만에 새로운 주인들이 나타났다. 아깝다는 생각으로 값을 매겼으면 비워내지 못했겠지. 남은 코렐 그릇으로도 충분해. 찬장에 생긴 빈 공간을 보니 시원한 느낌이 든다. 빽빽이 자리 잡고 있던 다른 찬장 속 물건들을 여유가 생긴 자리에 넣은 후 아일랜드 식탁 위에 있는 물건들도 어떻게든 치워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집기 옆에 넣어 서랍을 닫고, 매일 챙겨 먹으려고 꺼내 두었던 꿀 통도 다시 양념통 옆에 두고 찬장 문을 닫았다.
사는 공간이 내 모습이다. 모든 물건들도 집안 상태도 나 자신이다. 물건들이 많아서 그 물건들을 숨길 수납공간이 부족한 탓도 아니다. 깊이 생각하고 따지지 않고 편안함이라고 착각한 게으름의 산물, 선택하지 않은 선택을 한 결과다. 귀찮으니까. 힘드니까. 아이까지 케어해야 하니까. 밥도 차려야 하니까. 많은 일들 속에서 간결한 생활을 위한 노력은 없었다. 효율적인 동선을 위한 고려도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기에 지치고 힘든 걸까. 하루를 돌아보니 일을 해내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았다. 쪼개진 시간들을 합산하니 그러했다.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쉬지 않는 것도 아닌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 년이 된다.
비워내면 나아질 것만 같다. 내 하루에도 여백이 생기리라. 물건을 치우는 데 드는 노동, 어질러진 모습을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지는 감정으로 힘들어지는 일이 줄겠지. 가만히 놓여 있는 그릇들, 그 사이의 여백을 보니 숨통이 트인다. 아무래도 숨 쉴 공간을 만드는데 당분간은 숨 가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