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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May 06. 2021

흰머리

사라지지 않았다




"어머! 너 흰머리가 왜 이렇게 많아?"

"모르겠어요."




대학 시절 잠시 운동장에 앉아 함께 쉬는 동안  동창 언니가  뒤통수를 보다 말했다. 그래서 알았다. 오른쪽 뒤통수에 흰머리가 있다는 것을.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도.  뒤로 흰머리에 대한 이야기가 귀에 꽂혔다.    곳에서 계속 나고, 집단으로  있다. 뽑으면  되고 염색해야 된다 등등.




최근 새로운 곳에 흰머리가 났다. 왼쪽 앞머리에. 흰머리가 났네. 여보 나 흰머리 났어.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보통 때는 보이지 않는다. 검은 머리칼에 덮여있는데 발견한 이후부터 화장실 거울을 보며 자주 들춰보았다.




거울에 비친 검은 머리칼 속 흰머리를 보았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흰머리는 왜 났을까.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가. 거울을 볼 때마다 앞머리뿐만 아니라 뒷머리 속도 들추며 흰머리들을 마주했다. 가닥가닥 세어 보기도 했다.




아들에게도 이야기했다. 엄마 흰머리 났어. 아들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잘라 버려. 아들이 말했다. 뽑지 않고 부분 염색도 하지 않을 거니까.. 아들의 말에 당장 가위를 들고 왔다. 자꾸 뜨는 검은 머리카락들을 왼손으로 꾹 눌렀다. 검은 머리카락들이 잘리지 않고 흰 머리카락만 자를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 가위를 갖다 댔다. 최대한 뿌리에 가깝게. 싹둑.




흰머리가 사라졌다. 거울 속에서 앞머리칼을 넘겨도 검정 머리카락만 보인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흰머리가 사라지자 나머지 검은 머리카락들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머리가 이렇게나 많다. 심지어 뒤통수에 나있는 흰머리 집단은 아직도 그대로다. 뒤통수에 나있는 것들까지 잘라내면 내 머리에 흰머리는 없게 되는 건가. 온전히 검은 머리만 있게 되는 건가.




한 가닥의 흰머리는 그간의 고단한 일상으로 인해 피어난 결과물도 훈장도 아니다. 나이 들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다시 날 텐데.. 그때마다 잘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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