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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Apr 11. 2022

필요하면 사라

필수 가전제품




문명의 혜택 좀 누리고 살자. 멀쩡한 휴대폰을 바꾸고 비어있던 손목을 채우려 워치를 매만지며 남편이 말했다. 그래, 우리도 그러고 살자. 건조기도 들이니까 너무 좋다니까. 처음에 건조기 구매를 반대했지만 흐린 날이나 몸이 아픈 날에는 건조기 없음 어쩔 뻔했나 싶기에, 있으면 좋다는 가전제품 예찬론자들의 논리에 크게 동의한다. 줄어드는 옷과 이불을 보면 이견이 다시 올라오려 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건조기 있으니까 좋지 않냐고 가끔 물어오면 두말 않고 건조기 예찬을 한다. 아직 들일 게 많다.. 그리고 없던 시절과 비교하면 가사노동의 질이 좋아진 건 두말할 필요도 없으니.





저녁을 준비하려고 냉동실을 여니 얼려둔 밥이 없다. 밥부터 하자. 솥에 쌀을 붓고 세 번 정도 씻어서 가스레인지에 얹은 후 반찬 만들 준비를 한다. 재료를 다듬고 요리 레시피를 정독하다 보면 금세 밥물이 끓어오른다. 뚜껑의 작은 구멍에서 물이 넘쳐 나오면 불을 최대한 줄이고 타이머를 10분 설정한다. 다시 하던 일을 하며 잊고 있다가 알람이 울리면 밥솥 뚜껑을 한 번 열어본다. 다 된 것 같으면 불 끄고 뜸을 들이고, 물이 많으면 2분 정도 더 끓인다. 이때도 알람을 맞춘다. 60분 설정할 수 있는 뽀모도로 타이머로 사용하다가 고장 난 줄 모르고 밥을 몇 번 태우고 나서는 휴대폰으로 대신하고 있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리면 가스불을 끈다.





밥솥은 또 왜 사지 않으려고 하냐. 과거의 내게 묻던 남편에게 전기밥솥이 싫고 솥밥이 맛있어서 좋다고 하고 말았는데. 실은 고무패킹을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는 등의 관리에 자신이 없는 데다 솥밥이 맛있다는 말에 꽂혀서 전기밥솥을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 친구 집에서 저녁밥을 먹는데 밥이 너무 맛있는 거다. 전기밥솥 밥도 맛있구나. 필요한 가전제품 목록에 밥솥을 추가했다. 함께 피크닉을 놀러 간 언니가 싸온 고구마가 맛있어서 맛이 너무 좋다고 했더니 에어프라이어로 무조건 군고구마를 만들어 먹는다는 말을 들은 게 일 년 전인데, 며칠 전 아이가 배가 고프다는 말에 찜솥에 고구마를 쪘다. 시어머니가 새것이 있다고 주신 다기에 받아와서 쓰고 있지만 에어프라이어도 있으면 좋겠지. 요리를 잘하는 지인이 오븐형 에어프라이어를 추천하여 에어프라이어를 사면 꼭 오븐형으로 사야지 마음은 그리 먹고 있다.





주전자 물이 끓는데 마우스에  붙어버린   대신 가스레인지 불을 꺼줄 다른 손이 필요해서 전기포트가  생각나고. 재택근무하게 되면서 가끔 원두커피가 당겨서   커피숍으로 나갈 때면 시간이 아까워 커피 머신도 들이고 싶고. 없이도 살았는데 필요하다 생각하니 희망구매 목록이 길어진다. 이런 생각을 결혼할 때부터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와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사를  것뿐인데 말이다.





이사로 인테리어, 가구를 알아보며 요즘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된 건 맞지만.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정리가 필요한 시점에 도래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아이는 금방 자라서 나이와 수준에 맞는 배움을 시기적절하게 받아야 하는데 매년 그 나이의 아이를 기르는 건 처음이라 그때마다 알아봐야 하고. 남편은 이직하여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듣고 내게 전해준다. 아이와 남편은 변하는데 집안이 그대로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는 품이 드는데 가사가 변하지 않는다. 매일 물건은 어질러지고 매 끼니 밥을 차려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기에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를 생각하는 삶이 싫지 않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기왕 들이는 거 오래 쓸 것으로, 물건을 찾고 고르는 일을 당분간 (기왕이면 오랫동안) 하지 않아도 될 좋은 제품으로 산다면 지불한 돈과 수고가 헛되지 않을 테다. 우물쭈물거리며 필요한 물건을 말하면 일관되게 이야기하던 남편. 뭐가 제일 필요할까. 그걸 사기 전에 물어도 늘 그랬듯 똑같겠지. 필요하면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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