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애 Mar 16. 2022

편안한 잠

집들이로 깨달은 의외의 사실




네, 또 놀러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시부모님이 하룻밤 주무시고 떠나셨다. 문이 철컥 닫히고 나니 어깨에 힘이 풀렸다. 음식 솜씨가 없어서 애초부터 음식 할 생각이 없었다. 맛있는 거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어머님도 내게 크게 기대하지 않으신 눈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저녁은 회 모둠으로, 다음날 아침은 밀키트로 차렸다. 저녁상을 치우고 누가 먼저 씻을지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편한 옷 좀 가져오라고 했는데, 열어보지 않아도 훤한 서랍 속에서 아버님, 어머님께 드릴 옷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편한 옷이 많긴 한데.. 어.. 뭘 드려야 하지. 남편 바지는 스포츠 브랜드의 긴 바지가 있었지만 내 옷은 정말 꺼내올 수가 없었다. 세일할 때 산 보세 옷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입을 거니까, 아무거나 입어도 된다는 논리 -도 아니고 무신경한 태도- 로 살아왔다.




어머님은 (이 상황도 예견하셨는지) 다행히 본인 옷을 챙겨 오셨다. 폼클렌징, 화장품, 치약, 칫솔.. 다 챙겨 오셨다. 다음날 밤 서랍을 다시 열어 보며 생각했다. 괜찮은 잠옷도 있어야 하는구나. 손님에게 건넬 잠옷이 필요해. 여태 이런 걸 입고 잤구나. 생각은 꼬리를 물어 나를 위해서도 제대로 된 잠옷을 사보자로 결론이 났다. 새로운 생각이 입력되자 자주 가는 대형마트에서 하는 의류 행사도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매대에 트레이닝복이 널려 있는 게 아닌가. 기본 트레이닝이었다. 흰색, 검은색, 회색.. 그중에서 퍼플 블루 세트로 골랐다. 손님에게 드릴 게 없다면서 손님에게 건네기 민망한 색으로 샀네. 손님은 가끔 오고 결국 내가 입는 거지 뭐. 비닐을 뜯었다. 사이즈 확인차 입었다가 그 상태에서 바로 가위로 싹둑 상표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입고 잤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잠을 다 잔 건가.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 반. 부드럽고 포근한 감촉으로 몸을 감싸고 있으니 거슬림 없이 푹 잔 걸까. 그날 오후에 같은 매장으로 가서 한 세트를 더 샀다. 참, 남편 것도 잊지 않고 함께 구매했다.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잔 날에도 개운하게 일어났다. 서랍 속에 있던 잠옷 대용의 옷들은 헌옷수거함에 넣어버렸다.




 오셨네요. 그렇다. 나는 삼일째 같은 매장을 방문한 것이다. 남편이 사이즈가 작다네요. 상표를 제거하고 사이즈 확인을 못했단  알았어요. 34 주세요. 다른 색상, 다른 사이즈 옷을  가져왔다. 글을 쓰다가 상품을 검색해보니 온라인이  저렴하지만 내가 싸게  제품도 있어서 괜찮다. 그보다 지금 입고 있는 잠옷이 까끌하고 간지럽다.  밖에서 입는 옷만 신경 썼다. 그렇다고 좋은 소재의 예쁜 외출복을   아니지만.. 신경이 곤두서지 않도록, 집안에서 다른 일에 집중할  있게 만들어주는 잠옷 덕인지 오늘 아침에는 해야  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해냈다. 그나저나 안방 침대에서 주무신 어머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들..  이불 바꿔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동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