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잠

집들이로 깨달은 의외의 사실

by 다애




네, 또 놀러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시부모님이 하룻밤 주무시고 떠나셨다. 문이 철컥 닫히고 나니 어깨에 힘이 풀렸다. 음식 솜씨가 없어서 애초부터 음식 할 생각이 없었다. 맛있는 거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어머님도 내게 크게 기대하지 않으신 눈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저녁은 회 모둠으로, 다음날 아침은 밀키트로 차렸다. 저녁상을 치우고 누가 먼저 씻을지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편한 옷 좀 가져오라고 했는데, 열어보지 않아도 훤한 서랍 속에서 아버님, 어머님께 드릴 옷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편한 옷이 많긴 한데.. 어.. 뭘 드려야 하지. 남편 바지는 스포츠 브랜드의 긴 바지가 있었지만 내 옷은 정말 꺼내올 수가 없었다. 세일할 때 산 보세 옷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입을 거니까, 아무거나 입어도 된다는 논리 -도 아니고 무신경한 태도- 로 살아왔다.




어머님은 (이 상황도 예견하셨는지) 다행히 본인 옷을 챙겨 오셨다. 폼클렌징, 화장품, 치약, 칫솔.. 다 챙겨 오셨다. 다음날 밤 서랍을 다시 열어 보며 생각했다. 괜찮은 잠옷도 있어야 하는구나. 손님에게 건넬 잠옷이 필요해. 여태 이런 걸 입고 잤구나. 생각은 꼬리를 물어 나를 위해서도 제대로 된 잠옷을 사보자로 결론이 났다. 새로운 생각이 입력되자 자주 가는 대형마트에서 하는 의류 행사도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매대에 트레이닝복이 널려 있는 게 아닌가. 기본 트레이닝이었다. 흰색, 검은색, 회색.. 그중에서 퍼플 블루 세트로 골랐다. 손님에게 드릴 게 없다면서 손님에게 건네기 민망한 색으로 샀네. 손님은 가끔 오고 결국 내가 입는 거지 뭐. 비닐을 뜯었다. 사이즈 확인차 입었다가 그 상태에서 바로 가위로 싹둑 상표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입고 잤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잠을 다 잔 건가.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 반. 부드럽고 포근한 감촉으로 몸을 감싸고 있으니 거슬림 없이 푹 잔 걸까. 그날 오후에 같은 매장으로 가서 한 세트를 더 샀다. 참, 남편 것도 잊지 않고 함께 구매했다.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잔 날에도 개운하게 일어났다. 서랍 속에 있던 잠옷 대용의 옷들은 헌옷수거함에 넣어버렸다.




또 오셨네요. 그렇다. 나는 삼일째 같은 매장을 방문한 것이다. 남편이 사이즈가 작다네요. 상표를 제거하고 사이즈 확인을 못했단 걸 알았어요. 34로 주세요. 다른 색상, 다른 사이즈 옷을 더 가져왔다. 글을 쓰다가 상품을 검색해보니 온라인이 더 저렴하지만 내가 싸게 산 제품도 있어서 괜찮다. 그보다 지금 입고 있는 잠옷이 까끌하고 간지럽다. 집 밖에서 입는 옷만 신경 썼다. 그렇다고 좋은 소재의 예쁜 외출복을 산 건 아니지만.. 신경이 곤두서지 않도록, 집안에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잠옷 덕인지 오늘 아침에는 해야 할 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해냈다. 그나저나 안방 침대에서 주무신 어머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들.. 봄 이불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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