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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Mar 09. 2022

우리 동네

스쳐가는 사람들





집으로 향하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많은 이들을 스쳐간다. 엄마와 그녀의 손을 잡은 작은 아이, 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쇼핑카트를 끌고 가는 할머니, 무릎 아래 하얀 다리들이 추워 보이는 여학생과 서로 장난을 치는 남학생들. 마트로 장을 보러 갈 때 한 번, 돌아오는 길에 한 번 횡단보도를 기다린다. 장바구니에 한가득 물건을 담아 낑낑대며 걷던 어느 날에는 한 젊은 남자의 크고 쾌활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통화를 하며 건너던 남자. 누가 들으면 살고 싶어서!… 커다랬던 소리는 순식간에 건너가 버렸다. 안달 난 줄 알겠다? 뒤에 말은 뭐였을까. 아이가 킥보드로 쌩하고 달려 나간 사이 생각했다. 살고 싶다는 말 뒤에는 좋은 말이 입에 붙질 않았다.





같은 길을 매일 지나면서 같은 사람들을 본다. 수산물을 파는 아저씨, 생활용품을 파는 아저씨, 붕어빵을 파는 할머니, 요구르트를 파는 할머니. 그들을 지나치면 다른 사람들이 있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 길은 익숙해졌는데 사람들이 낯설다. 이전 동네에서 오래 살았어도 지나는 사람들이 익숙한 건 아니었지만.. 아이와 축구하려고 놀이터로 향한 날, 공을 주고받다가 놓쳐버린 공을 주으러 화단 쪽으로 갔는데 산책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도 함께였는데 그녀가 그 비둘기를 좇아 빠르게 몇 걸음 걸으니 비둘기는 날 듯하다가 날지 않고 걸어갔다. 한 번 더 좇아갔지만 살짝 멀리 갈 뿐 비둘기는 다시 땅을 걸었다. 그러자 다음에는 뛰어가더니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괴성과 함께.





동네 작은 마트 가는 길이나 대형마트 가는 길이나 거리가 비슷해서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아이는 익숙해진 큰 마트에서 새로운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붙여보자면 마트에서 엄마 몰래 따라가기. 엄마를 몰래 따라오는 재미가 있는지 마트로 들어서면 먼저 가라고 급하게 손짓하는데, 그때부턴 뒤따라 오는 아이를 못 본 척 천천히 장을 보면 된다. 살 거 다 담고는 갖고 싶은 라탄 바구니가 잘 있는지 구경하러 정리함 코너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할까, 괜찮은 상태를 눈으로 확인했으니 그냥 카트에 담아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한 여성이 걸어왔다. 불투명한 서랍장으로 몸과 손이 향했다. 무표정한 얼굴과 함께. 그녀 뒤로 빠른 걸음의 할머니가 다가왔는데 그보다 더 빠르게 말들이 도착했다. 있는 거 활용해라, 있는 거. 같은 말은 두 번씩 반복됐다. 바구니 구경은 그만두고 계산대로 걸음을 옮겼다. 딸의 나이가 나보다 더 많아 보였는데. 그녀의 무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튀김과 물떡을 먹으러 자주 들른 분식점에서 아주머니  분의 물음이 공중에 흩어지던 모습, 자가진단키트를 사러 들른 약국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하는 약사와 아르바이트생들. 그런 모습들이 쌓여간다. 일을 끝낼 때마다 꼬박꼬박 업무를 완수한 사실을 알리던 씩씩한 아르바이트생이 있던 가게. 계산해달라는 말에 휴대폰을 쳐다보다 고무장갑을 벗고 오려는 아르바이트생을 한숨으로 막고 계산하던 사장님. 음식이 맛있어서 아이가  가자고 조르지만 발걸음이 그리로 떨어지지 않는다.





마트 갔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사람들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같은 자리를 맴돌기도 한다. 배드민턴 코트를 빙글빙글 도는 아줌마들처럼. 나도 마트와 집을 빙글빙글 돈다. 지금 사는 이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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