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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pr 17. 2023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찾아서

Ep.1 당신과 나의 소음 (3)

어릴 때 이 구절을 읽으며 마음을 조아린 기억이 났다. 원하는 것을 되살리 위해, 당장은 원하는 걸 쳐다보면 안 된다는 이상한 당부, 그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내 마음의 가장 큰 소음을 잠재우기 위해, 작은 소음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과제처럼.


큰 병을 치료하려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감내하는 것처럼, 역시 인생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돈과 시간으로 전문가를 고용한다고 해도, 내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건 내 몫인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진심으로 오르페우스가 유혹을 이겨내길 응원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망했고, 그 꼴을 읽으며 망연자실했던 난 망하지 않았다.

상담은 장장 10개월간 이어졌다. 단언컨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다. 상담은 과거의 경험이 만든 마음의 구조를 세밀하게 들여다 보는 작업이다. 그래서 상담에선 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게 한다. 엄마, 아빠, 주 양육자와의 관계, 그들이 어린 ‘나’에게 끼친 다양한 정서적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그 기간 동안 매주 정해진 시간에 1시간 30분 정도의 상담을 했다. 처음 5회는 잠들기 전 ‘헤헤 내일 상담가는 날이네’하면서 좋아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일뿐,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아픈 기억을 부드럽게 들쑤시는 상담샘 덕분이었다.


말끝마다 무안을 주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한 험담을 어린 나에게 했던 주 양육자,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귀환해 가족 구성원의 징징거림까지 들어주다 지쳐 잠들던 어머니. 우리 가족은 그런 와중에서도 하하 호호하며 저녁을 먹던 사람들이었다.


원망과 상처와 웃음이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던 나의 과거. 그 위에서 난 비합리적인 가정환경을 싫어하면서도 의지하며, 적당히 잘 웃고 활발한 인간으로 성장했다.


상담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난 인정과 안정, 그리고 사랑이 고팠던 10대의 나와, 그래서 거센 말과 생각을 갖고 ‘지금 여기’를 떠나고 싶어 했던 20대의 나를 끌어안으며 펑펑 울었다.


아직도 센터가 있던 역삼역에 가면 아직도 그 눈물이 떠오른곤 한다. 그 시간 동안 깨달은 건 꽤 많았다.


숱하게 책과 영화를 보고, 창작자와 지식인과 토론하고 비평했지만, 정작‘나 자신’에 대한 중요한 문제는 돌보지 않았다는 것. 십수 년간 영화를 보며 ‘이건 나쁜네 괜찮네’ 평가하며, 앞선 학자와 선배들이 갈고닦아놓은 이상향을 내 것이라 여기며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좋은 영화를 찾아 달려왔다는 것도.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사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쉽다. 그런 이유에서 요즘도 주변 지인에게 안전이 보증된 심리 상담을 권하곤 한다.


"보약 같은 거야. 몸이 아프지 않아도 시간 있고 돈 있을 때 먹어두면 좋은 거. 다만 비싸고 쓰지”


우리는 모두 마음의 소음을 가지고 있다.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며 내는 불협화음,과거와 현재의 ‘나’들이 화해하지 못하고 끼릉대는 소리들. 우리 삶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소음이 있다. 산다는 건 나의 소음이 어디서 나는지 귀 기울여서 하루하루 꾸준히 잠재워 가는 게 아닐까.


침잠의 시간을 마치자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만약 쇠 가는 소리가 나던 남자와 참담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변화의 기회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엔 분이 안 풀려 증오했지만, 지금은 5분 전에 지나간 파도처럼 무의미하다.


참 어려운 시절이 있지만,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해 주던 따뜻한 친구들이 있었고 사려 깊으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던 상담샘이 있었고, “그래도 그 사람 너무 미워하진 마, 자기 마음이 얼마나 안 좋으면 그러겠니" 라고 말하는 착한 곰 같은 우리 엄마가 있었다. 고마운 이들 덕분에 오만과 편견의 소음으로 퍽 시끄러웠던 인생 시즌 1을 마쳤다.



<Noise of life> Ep.1 당신과 나의 소음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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