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편견 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OFTEARS May 22. 2016

무엇을 해도 재미없는 순간

다 같이 힘냅시다

모두가 열광하는 로맨스가 담긴 영화 혹은 드라마를 보아도 흔히 요즘 하는 말로 ‘심쿵’ 하지 않는다. 이전엔 모든 열정을 쏟아붓던 일이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냉정. 아니 그것을 넘어 냉랭함이 되어 버렸다. 냉랭함으로 바뀐 불씨는 이제 꺼져, ‘꿈’이라는 생명체는 사그라진 지 오래. 오히려 꿈같은 게 사라지는 것이 현명하고 시대를 잘 반영하는 것이 되어버린. 



주도적으로 하던 일. 힘듦이란 게 뭔지 몰랐던. 가진 거라곤 깡밖에 없던 그 시절은, 이제 내 심장 깊숙한 곳에 박힌 ‘과거 회상 사전에서나 찾아야 할 것 같은 그런 막연함. 닭가슴살처럼 퍽퍽하고 간도 배이지 않은 심심한 ‘시간 연명’은 의미를 없게 만든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누구나 알고 싶어 하는 오래된 궁금증은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 더 깊이 묵상하게 되고 아무도 없고 도태된, 그러니까 마치 다른 사람들은 빛이 반짝거리는데 내 모습은 한없이 밍밍하고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그때. 



Courtesy of Pixabay



울고 싶은데 울음은 어린애의 전유물로 낙인찍어 쪽팔려 못하겠고,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남들이 먼저 가버리니 그럴 수도 없다. 어차피 빼앗겨 버린 일등의 자리. 인자 와서 순위 좀 내어 줘 봐야 뭐가 문제겠냐마는 그래도 내 이름 세 글자를 아는 사람들에게 살고 있는 흉내는 내야 날 키워주신 부모님 뵐 면은 서지 않겠는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인 청년의 오늘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모순에 휩싸였고,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 절망이란 투구를 쓰고 고민의 갑옷을 입고, 막막함이라는 신발을 신은 사람. 



2016년 5월. 대부분의 청년은 한마디로 무엇을 해도 재미없는 순간을 누리고 산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같은 숨을 쉬고,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같은 문화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있다. 그것은 남들보다 학식이 부족하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혹자는 나를 두고, ‘당신은 나사 한쪽이 풀렸소.’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가감 없이 고백하건대 나는 보통의 삶을 살지만 보통의 여유를 누리진 못하고 있고, 그 여운과 아쉬움은 멀리 날려 보낸 지 오래다. 



Courtesy of Pixabay



왕성한 활동력이 필요한 30대 중턱의 사나이지만 제 몸 하나 일으키는 것을 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워하고, 꼭 무슨 대단한 사람인 것 마냥 산다. 그러니 내 몸 단장이나 핸섬하게 보이기 위한 허세는 어찌 보면 위선이고 사치다. 



매일 3끼씩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늘 할 수 있는 것은 고맙습니다라는 말뿐이지만 그렇게 호기 좋게 내 입으로 가져간 물과 음식을 뒤로 내보내는 일은 가끔은 전체를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겹다. 


Courtesy of Pixabay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 보면…



몸을 씻는 것은 내 육신에 향기로운 냄새를 안겨주니 그야말로 축복이며, 여러 가지 알고 모르고 지은 죄로 더럽혀진 내 영혼은 내가 믿는 하늘 아버지의 말씀으로 씻어낼 수 있으니 행운이다. 



뻐꾸기를 보면 어미는 어눌하기 짝이 없어 제가 아파 낳은 새끼 못 알아보고, 그저 ‘입 큰 놈이 왕(王) 먹으라.’면서 편애하는데, 그리고 며칠 되지도 않아 야멸차게 쫓아내는데 나는 무려 반 칠십 가량의 세월 동안 예뻐라 하고, 귀여워 죽는 식구 있으니 다행이다.  



스마트하진 않지만 인간의 이치는 겨우 깨달아서 무엇이 그릇되고 무엇이 바른지 구분할 수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 앎이 글로 이어지고, 또 말로 퍼지고 다시 깨달아 손으로 재차 옮길 수 있으니 되었다. 



욕심이 한없이 많지만 제 분수를 알아서 아끼고 또 아껴 무엇인가 큰 목적이 있을 때 투척할 수 있으니 되었다. 이런 모든 행운과 감사가 내 속에 있지만 말했듯 나 역시 ‘무엇을 해도 재미없는 순간’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 가끔 가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고난이 겹쳐오는 거지?” 



되뇌고 중얼거리면서도 생각의 한편에선 나보다 더 힘든 이들이 많은데 나는 그에 비하면 엄살이지 하고 깨닫게 된다. 그게 제일 큰 감사. 단언컨대 나는 힘들다. 누구랄 것도 없이 힘든 이 세상.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느냐고 되묻는 노래 <여러분>의 가사처럼 나 또한 힘들고 외로운 부류의 단편이다. 



하지만 할 수 있거든, 아니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이기고,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내 몫이다. 노파심에 말하건대 나는 성공하지도 극복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성공은 차후 있을 수 있어도 극복은 평생 없을 수도 있다. 오로지 현재형.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사는 그것뿐이다. 나의 존재가 민폐가 되지 않고 필요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 글이 무엇을 해도 재미없는 순간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 위로가 됐으면…….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방송사 뉴스에 보낸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