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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Oct 14. 2017

흩어진 편견 조각… 그리고 탄생의 의미

시일이 얼마가 걸리든 무슨 방법이든 함께 어울려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터울이 많은 형 덕분에 난 15살부터 교회 내에서 청년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이 맞지만 장애가 있었던 탓에 동기들과 선배들은 감당하기 어려워했고 (그들도 어렸으니) 그 결과 모임에는 참석했지만 심심함도 더불어 얻게 됐다. 1년 동안 무료함과 싸우다가 당시 청년부 담당 전도사님의 넓은 배려로 청년부로 승진(?)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친형의 존재가 컸다. 형에게 감사한다.



청년부로의 고속승진이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낙하산 인사(^^)이긴 하지만 1년 전과는 확 달라진 대우와 헌신은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스물도 안 되는 나이에 들어갔으니 나는 만년 막내였고, 선배 형 누나들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도 순 나의 몫이었다.



물론 그 당시엔 때론 선배랍시고 후배에게 말을 놓고 존경을 받는 일을 동경한 적도 있으나 누구라도 외면하지 않고, 행동 하나, 말 하나에 모두가 주목했던 그 순간을 무를 이유는 없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신기한 일이 있었다. 그땐, 주 2회씩 청년부 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을 시기여서 중고등부 활동은 전혀 없었을 때였는데 웬일인지 중고등부 부서에서 함께 수련회를 가자고 먼저 제안해왔다. 처음엔 나름 청년부 생활에 젖어서(^^)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계속되는 제안에 스리슬쩍 넘어갔다.



오랜만에 또래와 어울려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며 무엇보다 당시 청년부 생활의 원동력이었던 큰 형님! H형님께서 내 전담 도우미로 동행하신다니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사실 수련회 순서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끝 일정으로 ‘캠프파이어’를 했었다는 것과 쏜살같은 일정 가운데서도 눈에 띄었던 여자 동기가 있었다는 것 정도? 그런데 진짜 그 정도가 다였다면 아쉬웠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그 기억들과 더불어 하나의 기억이 더 남아있다.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돈 주고도 바꾸지 않을 몇 안 되는 순간들 중 하나다.

 




때는 8월 중순. 한낮의 볕은 너무 거세서 사람의 의욕을 바닥으로 꺾을 그런 날씨가 지속되던 그때. 아까 언급한 H형님은 언제나 그렇듯 자상하고 진중한 말투로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티어스야. 형이 아까 새벽에 우리 티어스 잘 때 요 앞에 산을 다녀왔는데 말이야. 정상에 올라갔더니 네 생각이 많이 났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 정상에 올라가서 밑을 내려다보면 네가 참 좋아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기억이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도 선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형이 결정을 했다. 허허. 너와 같이 산에 오르는 거야.”



“아니! 형님 그냥 오르셔도 힘든데 휠체어를 밀고 산을 어떻게….”



“아, 티어스야. 우리가 올라갈 코스는 이미 정해놨어. 하하. 너, 저기… 형이 한다면 하는 사람인 줄 알지? 우리 안전은 주님이 책임지실 거야. 그리고 걱정 안 해도 되는 게 산이 그다지 높지 않아. 그… 우리 티어스가 걱정하는 건 이해되는데 너무 걱정하면 형이 서운해지려고 한다야 형 못 믿는 건 아니지?”



“네. 하지만….”



“됐쓰. 거기까지 하자. 아,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오르지 않는다. 형이 널 어깨에 짊어지고 오를 거야. 하하하하하….” (무한대 웃음)



무한 긍정의 H형님. 그의 확신에 찬 눈빛에도 불구하고 연신 만류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형님과 나는 마치 전쟁에 임하는 군사와도 같은 비장함을 가진 채 등산의 채비를 마쳤다.



마침내 H형님의 <준비됐지? 자세 괜찮지? 좋아 렛츠 고!> 힘찬 구령과 함께 여정은 시작됐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겁이 많은 놈이 어인 일인지 안전장치 하나 없는 위험한 산행은 기쁜 마음으로 올랐다는 게 신기하다. 당시 몸무게 26kg... 내지는 30kg. 분명 또래보다는 말랐지만 어깨에다 짊어지고 평지도 아닌 산을 올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10분이나 흘렀을까? 등반에 적신호가 켜졌다. 풍경에 대한 소감을 나누며 천천히 오르던 그때. 배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힘드실 형님께 차마 말씀드릴 수 없어 속으로만 삭일 무렵. 한참을 떠들던 녀석이 말이 없자



어디 안 좋구나.”



형님이 입을 떼셨다. 하는 수 없이 사실대로 말씀드렸더니 더욱 스피드를 내셨다. 인간이 낼 수 있는 한계까지 끌어올려 올라갔다.


조금만 힘내자.

조금만 힘내십시오.



형님은 나를 독려하기 위해. 나는 형님을 응원해드리기 위해 반복하며 그렇게 올라갔다. 절대적 신뢰 없이는 불가능했다.



통증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정면과 아래를 응시했다. 눈에 땀이 들어가 빚어낸 착각일까 지독히도 찬란했다. 찬란함과 고된 통증의 경계를 오가면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는 감격에 차서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먼저 올라 간 선발대는 우리를 향해 네버 엔딩 박수를 쳤고 H형님은 먼저 오른 이들에게 내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하셨다. 지금도 떠올리면 짜릿한 이 기억을 내가 전파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편견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화자(話者)인 내가 나 중심으로 말할 리 만무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열이면 열 하나같이 H형님만 대단하다고 한다. 열의 하나 아니 백의 하나 정도는 나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할만한데 말이다.



내겐 형님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었고, 때문에 무한의 고통도 견딜 수 있었다. 물론 형님께선 무한 찬사 받으셔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속에 녹아든 함께함의 흔적은 알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만일 모든 것을 뿌리치고 오르지 않으려 했다면 H형님 감독의 이 감동적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편견 조각이다.  




KBS 드라마 <굿닥터> 포스터. Copyright © 2013 KBS. All Right Reserved.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편견 조각.



서번트 증후군과 함께하는 박시온은 의사가 꿈이다. 그것도 콕 집어 서전(외과의). 외과의의 꿈을 키운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 형의 죽음을 떠올리며 만일 타인에게도 자신의 형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치료해 주고 싶다는 것. 그에게 자격은 충분했다.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자폐성 질환은 그에게 더디고 어눌한 면을 선물했지만 동시에 암기력과 세밀함 또한 존재했으니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알 리 없는 치열한 생과 사의 현장에선 편견이 존재했다. 시온이 의사의 책무를 다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무시와 조롱의 시선이 있었다. 시온의 선배였던 김도한은 물론이고 그를 평생 사랑하기로 한 차윤서 역시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편견의 조각은 시간이 흐르자 온전한 형태로 모양을 갖췄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들이 찾아왔을 때 시온은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다.



메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온의 대사 중



이 이야기는 4년 전에 방영됐던 드라마 <굿닥터>의 이야기다. 그 감동이 식지 않아서일까? 꽤나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바다 건너 미국으로 건너가 그 나라 정서에 맞게 편견을 쌓고, 또다시 깨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비록 이 지면에는 둘 아니 셋의 편견 조각밖에 기술하지 못하지만 삶의 틈새에는 어마어마한 편견의 조각들이 놓여 있다.



뜬금없지만 이 시점에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간에 많은 글을 통해 편견의 답답함을 토로해왔다. 그러나 답답함만 느낀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없었다. 내가 H형님과 산을 올랐던 것과 시온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했던 것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직접 부딪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편견을 깨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편만해진 편견의 현장에 직접 나가 올바르게 알려주는 방법밖엔 없다. 시일이 얼마가 걸리든 무슨 방법이든 함께 어울려 지내다 보면 언젠간 알게 되리라 믿는다. H형님의 경우처럼, <굿닥터>의 식구들처럼.



물론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씨앗을 뿌려야 열매를 맺듯 씨 뿌리는 사람으로 남게 되더라도 만족한다. 그래야 내 후대 사람들은 편견이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될 테니까. 이것이 신께서 내게 삶을 허락하신 이유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믿음 때문에 난 오늘도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꼭 덧붙여지는 한 마디…



꼭 한 번 봬요!








커버 및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KBS 드라마 <굿닥터> 이미지이며 출처는 KBS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 역시 KBS에 있음을 밝힙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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