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OFTEARS Sep 17. 2015

미칠 것 같은 통증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나는 뇌병변 장애인이다. 사실 난 명칭 따지는 건 싫어하지만 뇌병변 장애인이라는 표현은 비교적 근래 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뇌병변 장애[腦病變障碍, brain lesions]은… 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뇌졸중(腦卒中) 등의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때문에 난 엄연하게는 뇌성마비(Cerebral Palsy) 장애인인 셈이다. 



병의 경중 정도는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소아마비보다 뇌성마비가 훨씬 중한 편이다. 장애 명칭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이쯤 해두자. 나는 뇌성마비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재활 치료에 열심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부터 내 잔머리는 밝게 빛났다. 어떤 구실을 해서라도 치료를 받지 않으려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통증이 장난 아니라서……



나를 아는 사람들 몇몇은 이렇게 말하면 바로 반론할 것이다. “그까짓 거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모르는 소리다. 그 말은 치료를 받아 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상황이 돼서 치료를 받는다면 그야 말로 ‘찍’소리 조차 내지 못할 만큼 아파할 거다. 장담한다. 물리치료(Physical Theraphy),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 보이타 치료(Voita Theraphy) 등. 해 보기 전엔 보면 모른다. 특히 보이타 치료에 경우 굳은 근육을 강제적으로 펴 주고, 이완시키는 작업이다. 받고 나면, 정말 죽다 살아난다. 



물리치료의 경우 보이타에 비해 통증이 덜 하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다. 작업치료의 경우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이 얼마나 답답한지 아는가? 이래서 난 재활치료를 피할 궁리를 하며 산 것이다. 하긴…… 변명이다. 나만 아팠던 게 아니니까……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론 지금도 기회가 있다면, 피하려 할 것이다. 



피하면 안 되지만 할 수 있거든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미칠 것 같은 치료의 통증이다. 어릴 적에 이런 통증과 마주할 때에도, 비장한 각오로 지낸 것은 나으리라는 믿음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이 시간을 견디면 아픔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참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 통증이 비단 치료 가운데만 있었을까? 아니다. 그냥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만으로도 통증은 있어 왔다.  그때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부모와 형제, 친구와 지인들, 그리고 내 심장을 스쳤던 여인까지.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난 다시 힘을 냈고, 다시 호흡했다. 



1리터의 땀, 수만 방울의 눈물을 떨어뜨릴 때, 그리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질 때는 하나님을 떠올렸고 향후 내가 돌아 갈 하늘 고향을 떠올렸다.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기 때문에, 내 아픔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타인의 아픔이 나보다 작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수없는 아픔들 가운데서도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은 알지 못해도 삶의 이유 자체는 참 값지다는 것. 


나는 안다. 세상 어느 아픔보다도 사람이 강하다는 것을…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왜냐면 언젠간 통증은 다 나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다독거릴 수 있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