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서 가장 완전한 존재
하루의 시작을 컴퓨터로 시작해 컴퓨터로 하루를 마감하는 나. 물론 그중엔 집필의 비중이 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사는 사이버 상의 무법자. 그런데 오랫동안 윈도 7을 써오다가 윈도 10으로 강제로 넘어오게 됐는데 고작 4개월 사용자, 다른 말로 하면 초짜라 그런지 많이 생경했다. 달라진 외관에, 달라진 환경, 그리고 약간은 고삐 풀린 망아지를 보는 듯 제멋대로인 면도 없지 않고.
물론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그 밥에 그 나물인 것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쓸데없이 위치를 많이 바꾸고, 뿐만 아니라 지나친 간소화나 확장화를 해 놓았다. 그런데 이런 낯섦 때문일까.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
예컨대 뷰티풀-나인(Beautiful 9)이란 운영체제가 있다고 해 보자. 이건 복잡한 기능 따윈 없다. 심플하다. 오롯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사용하면 된다. 서류철 묶음 모양의 폴더는 프로그램을 담는 대신 그 사람과의 추억과 현재를 공유하는 형태로 사용되며 아이콘(Shortcut)은 그 사람에게 가장 빨리 다가가는 열쇠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더블클릭 만으로 그 사람 곁으로 갈 수 있다.
익스플로러는 그 사람과 더 좋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한 전용 검색기이고, 때에 따라서는 그 사람 기분까지 헤아린다. 바이러스 따위는 없을 테니 백신은 당연히 필요치 않고, 업데이트는 필요할 때만… 그리고 그 사람이 잠에 들어있을 때 같은 고요한 시간에만 한다.
생의 한복판에서 감미로운 선율이 빠질 수는 없으니 주크박스 유틸은 필수이겠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멜로디가 흘러나와 관계와 신뢰가 돈독해지게끔 할 것이다. 많은 말과 제스처 없이도 서먹함은 물 흐르듯 사라지리라.
그러나! 아무리 지상 최대의 운영체제라 한들 시간이 흐르면, 소원해지고 새로운 맛도 덜할 터. 백신이 필요치 않을 만큼 오밀조밀한 둘만의 운영체제… 하지만 이것도 허점은 존재한다. 다름 아닌 감정의 변화다.
감정은 쉬이 어그러지는 만큼 원형보존이 힘들고, 한 번 어긋난 모양은 다시 복원이 힘들다. 감정에 일희일비하는 뷰티풀 나인은 위기의 상황이 찾아오면, 폴더에 담긴 모든 순간도 희미해지고, 더블클릭 한 번에 상대를 찾아가던 신박함 역시 방향을 잘못 잡아 오해라는 오류를 뿜기도 한다.
함께하기 위해 제작된 익스플로러 역시 어느새 그 의미를 잃어 가동을 멈추고, 주크박스의 장르 추천 역시 ‘글루미’(Gloomy)로 고정된다.
결국,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한 뷰티풀 나인은 끝내 이런 메시지를 뿜으며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your heart ran into a problem that it couldn't handle, and now it needs to restart. (당신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고,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아 또 하나, 말하지 않은 뷰티풀 나인의 최악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이 메시지를 목도하는 순간, 재생의 여지는 없으며 만일 뷰티풀 나인이 탑재된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싶다면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추억은 포맷이 불가능하니까.
참 별 놈의 생각이 다 든다.
그런데 사랑이 꼭 이런 것 아닐까? 나 또한 당신이란 존재와 추억이 담긴 리스크 가득한 뷰티풀 나인을 사용했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뷰티풀 나인의 사용법은 쉽지 않았어. 솔직히 말하면 어떤 운영체제보다도 까다로웠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쩔 수 없이 사용을 멈춰야 했을 때에야 깨달았어. 힘들었단 건 엄살이었고, 무척이나 행복해했었단 사실을 말이야.
어리석지만 할 수 있다면 다시 그 리스크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감정에 충실하지만, 서로의 흔적이 침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자연스러움을 내비쳐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이 당신이니까.
사실 난, 아직도 저 메시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your heart ran into a problem that it couldn't handle, and now it needs to restart. (당신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고,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작가의 말
‘뷰티풀 10’이 아닌 ‘뷰티풀 9’으로 가상 명명한 이유는 둘이 아닌 합쳐진 ‘하나’로서 가장 완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했던 아쉬움이랄까?
본문 이미지는 “Wikipedia Commons”에서 인용하였으며 구글 검색 시 “수정 후 재사용 가능”으로 추려진 결과이며 또한 이미지 속 문자 부분을 일부 수정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