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에 감사해보자. 하늘의 주인께서 터치하는 것만이 날 일으킬 수 있으니까.
지나는 세월의 양만큼이나 겸손의 구덩이도 깊이 파 보자. 좋은 말 읊조린다고 대단한 게 아니고, 입술로만 주님을 말한다고 그것이 곧 겸손의 증거가 되는 게 아니니까.
삶의 여정 가운데서 예기치 않게 똥오줌 같은 오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더럽다고 피하지 말고 나를 돌아보자. 내 말의 행실을 들여다 보고, 내면에 적대감은 없는지 점검함으로 마음의 결을 청소하자.
감정의 종류를 두고, 선악을 구분 짓지 말자. 예컨대 미련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고 치부하기보다 사안이 무엇이든 끝까지 가능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다 생긴 영광의 상처라고 여길 수 있다면 세상에 소용없는 감정이란 없다.
가끔은 비스듬히 걸어보자.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잰걸음이 올바르다고 확신할 수 없으며 조금 느리게 간다 하여 감히 틀렸다고 심판할 이 또한 없으리라. 비스듬한 보행이 흥미로운 것은 여느 때에는 느낄 수 없던 다른 종류의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그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수그러트리는 손가락질보다 상체를 꼿꼿이 세워주는 악수나 허그를 먼저 건네보자. 악수와 허그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그 비밀은 바로 상대에게 베푼 따뜻함의 제스처는 곧장 그에게 선한 빚으로 남게 된다는 것. 그렇게 되면 그는 필시 그 빚을 어떤 식으로든 갚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나를 향해 신뢰의 시그널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두 말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그 축복을 깨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 행동이 무가치하지 않음을 알리는 것이며, 이를 증명할 증거는 그간 전달받은 것보다 더 큰 파장을 가진 신뢰의 시그널을 전달하는 것이다.
똑같은 일상과 비슷한 것과의 이별을 준비하지 말자. 똑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것은 천국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어진 임무이며, 그 임무를 소화해 내면 보이지는 않아도 내 안에 인내의 훈장이 쌓일 것이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하늘의 주인께서는 무척이나 흡족해하실 것이다.
그냥 심심해서 써봤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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