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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Mar 19. 2020

근황 이야기

별 것 아니지만


Pixabay



근황과는 상관없는…




내가 교회를 가는 이유 그 첫 번째는 물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지만 두 번째는 주 안에서 하나 된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나누기 위함이다. 교제를 나누지 않으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쳐가는 느낌이랄까. 물론 누구나 그렇듯 모두와 두루 교제하는 것은 바라는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데 이는 나도 그렇다. 브런치를 통해 몇 번 언급한 동생 T는 물론이고, 매번 교회 갈 때마다 출석을 도와주시는 Y 형님 또한 내 솔메이트 중 한 명이다. Y 형님과는 차로 오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마지막으로 형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한 건 그러니까 세상에서 코로나의 코 자도 운위 되지 않을 때였다 (교회를 간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늘 그렇듯 정해진 주제는 특별히 없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레트로 이야기가 나왔다.



레트로가 나이 들수록 좋긴 한데 과연, 이 문화가 뉴트로라고 불려 가며 대세가 될 정도냐고 말하면서 요즘 핫한 양준일 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세간에서는 그에게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뮤지션이라고 말하던데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앞서 간다거나 튄다고 배척하며 외면한 날 포함한 그 시대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왜 했는지 모를 이야기다ㅋ) 그러다가 다시 급하게 방향을 튼 것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하필 그 형님은 내가 가장 지우고 싶은 그 날들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누가 봐도 내 잘못이 아니어서 같이 동조해주시긴 했는데 형님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그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지나면서 열이 받기 시작했고, 겨울의 정점이던 그때 기어코 난 땀으로 목욕을 하고야 말았다. 내 흥분과는 별개로 “이런 이야기 또한 레트로의 일종”이라고 말하는 형님의 위트가 즐거웠다.



근황이라 해놓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날, 그 시간이 그립기 때문이다.



이제야 꺼내보는 이야기…  



그 날 이후 내 외출이라 함은 구정 전날 단 두 시간… 이 날 하루다. 오랜만에 짬이 난 T는 황금 같은 그 시간을 제 몸 쉬는 대신 나와 놀아주는 데 할애했다. 그러면서도 늘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형, 저는 이게 노는 거예요.”하며 천연덕스럽게 대처한다. 휠체어에 앉은 놈이나 걷는 놈이나 결정장애가 심한 지라 천금 같은 두 시간 가운데서 뭘 먹을지 메뉴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날렸다.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고른 깐풍기의 알싸한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꿈에서도 그리울 스파이시한 깐풍기여! 코로나인지 귀때기로나인지 떠나면 먹으러 갈 테니 기다려~



T야 고맙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의 기세는 별것 아니었다. 물론 뉴스에서는 촌각을 다퉈 심각성을 논했지만 난 그것이 뉴스가 취해야 할 본래의 애티튜드라고 여겼기 때문에 괘념치 않았다. 내가 둔감한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둔감했다. 한산한 거리가 웬 말이고 마스크 대란이 웬 말이던가. 햇살은 미칠 듯 찬란했고, 거리는 시끌벅쩍했다. 위축됨은 전혀 찾을 수 없고, 단지 다른 날과 달랐다면 고향으로 간 인파 때문에 덜 북적였다는 거. 그것 외엔 없었다. 우리가 쫄아 있었다면 아마 분명히 행인들은 속으로라도 우릴 보고 바보라 했을 것이다.



깐풍기가 선사한 기름이 내 내장으로 휘집고 들어가기 위해 폼 잡을 때쯤, 충만해져 가는 기쁨의 무드를 느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되니 들어오라는 재촉 전화였다. 전화상으로 들리는 진지함은 약간의 결기도 섞여 있는 것 같아서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게 현재까지 나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결과론적 이야기이지만 그때 나를 불러들이셨던 가족들의 혜안에 감사하고 있다. 물론 그날 느낀 아쉬운 마음도 여전히 공존한다.



젠장, 코로나! 젠장…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2018>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아쉬움의 한숨과 뒷모습으로 마무리된 우리의 만남이 찰나로 끝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이 시간이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가슴은 이미 서러움에 북받쳤다. 그리고 그날 밤 설 연휴 특집 영화를 방송해주는데 지금 생각하면 평소처럼 두 말 말고 채널을 돌려야 했다. 한데 무슨 배짱인지 몰라도 고정해놓고 지켜봤는데 그 영화는 다름 아니라 <나의 특별한 형제>였다. 그 영화는 배우 신하균 씨장애인 세하 역할로, 배우 이광수 씨보조인 동구 역할로 나온다. 한데 보면 볼수록 모든 상황과 묘사들이 나와 T를 스크린 속에 그대로 심어놓은 것 같았다. 물론 상황과 장애는 달랐지만, 그래도 장애인이라면 한 번쯤 겪어 봤을 법한 일들이 나와서 그렇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흘러서 죽을 뻔 봤다. 영화 속 이광수 씨가 연기한 동구보다 백만 배는 잘해주는 T가 멀증나게 그리웠다.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 날은 만난 날이 아니던가. 이런 ㅋ



젠장, 코로나! 젠장…  

   




이리 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아




점점 더 시간이 흐르고, 확진자 수는 나날이 늘어갔다. 꼭 숫자 갱신 놀이하듯 하루에도 몇 명씩 늘며, 나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두려움을 오롯이 목도하면서 엉뚱하게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올렸다. 벤자민 버튼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으나 현 상황에서는 그가 살아온 거꾸로의 삶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가기는커녕 전진밖에 모르는 코로나에게 자비는 없었다.



신천지라는 불쏘시개





Pixabay



확진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느는 답답한 상황을 보면서도 한켠에 희망의 불씨를 계속 품었던 건, 큰 혼란에도 불구하고 나름 잘 대처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염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그런 거 다 내려놓고 현장 일선에서 애쓰고 계신 의료진과 다양한 방법으로 돕는 국민들의 따뜻함은 극복하기에 충분한 희망의 씨앗들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신천지라는 이단 집단의 발병이 생겨나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전부터 고민했다. 신천지는 이단이며, 모든 면으로 보아 비난받아 마땅한 집단이지만, 그렇다고 독자들로 하여금 사람 그 자체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망설였다. 한데 도저히 말을 안 하고는 못 배길 것 같아 한마디 하고자 한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교주를 따르고 신봉한다. 인간을 믿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 같이 중요한 순간에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자신이 찔리는 것이 있다면 또 모를 일이나, 병을 얻은 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에게 죄송할지언정 신앙을 감추거나 아픔을 감추지 않는다. 특히나 현 시국 같은 경우는 더구나 그래선 안된다. 한데 속상한 것은 타 종교를 믿고 계신 분들이나 종교가 없는 분들께서는 신천지와 교회를 통으로 비판하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얼마 전 확진자가 나온 그 교회의 처세는 어떠냐고 물으실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크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오면, 많은 교회들은 이미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상황이 장기화돼서 어려운 점이 분명 존재하나 지역사회에 결코 폐가 될 수 없어 온라인 예배로 주일을 성수하는 교회들과 성도들의 진정성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기독교가 세상 앞에서 반드시 좋은 모습만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단어로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 잘 안다. 교회와 기독교 전반이 하나님 앞에서와 세상 앞에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반성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천지와 함께 비난을 듣는 것은 정말 속상하다.



속상함은 속상함대로 놔둔 채로 우리 가족은 지난날, 아무 근심 없이 교회에 출석해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렸던 때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실감하며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브런치 매거진 PTL Time이나 다른 매거진을 통해서도 종종 종교적 색채를 지우지 않지만 실은, 나는 아직도 여러모로 부족하고 뿐만 아니라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와 같은 미숙한 신앙을 가졌다. 때문에 매일 묵상하는 경건의 시간(Quiet Time, QT)은 아직도 몸에 배이지 않았으며, 또 예배 중에 가족들 앞에서 목청껏 높여 부르는 찬양은 여전히 부끄럽다. 날라리 크리스천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사람에게 보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드리려고 애쓰고, 경건의 시간도 가지려고 애쓰고 있다. 앞으로도 이 마음이 변치 않길 바랄 뿐이다.

 


나의 동선과 삶      




들으면 그다지 좋지 않은 긴급재난문자 소리. 오늘은 또 어떤가 하고 들여다보면 몇 번 환자의 동선을 추가했다는 말을 자주 보게 된다. 나의 동선은 그럼 어떤가. 쥐뿔도 없다. 거실에서 방으로, 방에서 또 다른 방으로 그리고 화장실로 이 정도가 전부다. 삶의 대부분을 타인의 손에 맡겨야 하는 내가 화장실로 향하려면 만만찮은 노동력이 필요한데 안 그래도 자주 씻던 내가 팔자에도 없는 잦은 씻기에 돌입했다. 도와주시는 형님과 부모님께 감사하다.   



예배를 드리거나 QT를 하는 것 이외엔 가급적 즐거운 것만 하려 애쓴다. 이를 테면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본다. 아! 음악도 듣는다.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지만 혹여 지루하다면 아낌없는 토킹의 시간을 갖는다. 실은 이 모든 것이 코로나의 존재를 알지 못할 때도 해오던 것이라 특별할 건 없다. 다만 나가서 뛰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는 게임에 감사하고, 앉은자리에서 희로애락에 젖을 수 있는 음악에 감사하며, 넷플릭스에는 정말 큰 감사를 보낸다.



물론 이렇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모든 것들보다 먼저는 브런치에 글쓰기! 아부가 아닌 리얼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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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점령한 어지러운 시국이 답답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외출하지 못해 근질거리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왜 아니라고 하겠는가. 힘들지.



허나 나를 생각하기보다 내 옆에서 나를 돕는 가족들과 늘 응원해주는 지인들을 생각하면 내색하는 것이야 말로 면구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 모두도 다 같을 것이다. 이상이 나의 요즘 근황이다. 쓰다 보니 지나치게 솔직했나 싶기도 하고, 정돈되어 보이지도 않지만 한 번쯤은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다.



그저 힘내시길, 그리고 모쪼록 하나님의 긍휼 하심이 지구촌 전체에 임하시길….






본문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본문 이미지는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2018年 作> 스틸 컷이며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저작권은 해당 영화 제작사에 있습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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