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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Mar 26. 2020

하나 마나 한 소리, 갖나 마나 한 미련

프로레슬링 칼럼 18

▲ 레슬매니아 36 로고. ⓒ WWE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현재, 정신없이 살아간다. 물론 조물주의 보호하심 아래 아무 탈 없이 살고 있으므로 감사해야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스톱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뿐이지 꼭 멈춰버린 듯한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혼란스럽다. 분야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게 일시 정지 상태에 이른 지금. 프로 레슬링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 두 단체인 WWE와 AEW 모두 몇 주 전부터 무관중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코로나 19가 선사하는 영향력은 특히나 WWE에 더 심하게 다가온다. 그 이유는 WWE 내에서 가장 큰 이벤트이자 미국 전역에 큰 관심을 받는 PPV(Pay Per View)인 레슬매니아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WWE라는 단체의 행보가 그다지 큰 이슈를 끌어모으지는 못하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덜할 수 있으나 그래도 나름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올해 레슬매니아는 벌써 36번째 행사다.



WWE에 속한 선수나 체어맨인 빈스 맥맨을 비롯한 수뇌부들과 스태프들은 이런 레슬매니아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레슬매니아는 한 해 농사의 결과물이자 다음 해에 지을 농사의 기반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범상치 않은 행사를 코로나 19가 앗아가게 생겼으니 WWE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하긴 마냥 코로나 19 탓만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있다. 수뇌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매치업. 그러니까 로먼 레인즈 vs 골드버그의 타이틀 매치라든가 핀드 vs 존 시나의 굵직굵직(?)한 매치업들이 전부 한 마디와 한 순간의 도발(!)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사실상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라스트 매치로 점쳐지는 AJ 스타일스와의 매치 역시 사우디에서 펼쳐진 수퍼 쇼다운 2020에서 아주 잠깐의 대면으로 퓨드(Feud)가 이뤄졌다. 수퍼 쇼다운 2020에서 언더테이커의 경기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등장하고 사라지는데 거의 90% 이상의 시간을 할애했다. 이처럼 코로나 19의 영향 없이도 뭔가 번갯불에 콩 궈먹는 듯한 전개인 것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에 앞서 그렇게 적긴 했는데 코로나 19는 레슬링이 선사하는 최고의 흥을 잠재워 줬다.



최고의 흥이라 함은 바로 관중이다. 그들이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관중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이 현실이 되었다.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어떤 효과를 줘도 밋밋하다. 심지어 현지 시각 3월 16일 개최된 먼데이 나잇 RAW에서는 언더테이커가 분노 어린 표정으로 나와서 The O.C.의 한 축을 담당하는 루크 갤로우스와 칼 앤더슨을 무참히 밟아주었음에도 그저 선수들이 측은하게 보였고, 3월 16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3:16의 사나이 The Toughest S.O.B.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거친 말발과 호쾌한 스터너 행렬, 그리고 시원한 그만의 맥주 쇼는 마치 만취해서 난동 피우는 주정뱅이 아저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이라고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 다만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 스티브 오스틴과, 함께한 베키 린치, 그리고 무한한 스터너의 제물이 된 중계진 바이런 색스턴과 태그 팀인 스트리트 프로핏츠의 두 멤버들 모두 애쓰셨다고 말해주고 싶다. 스포츠의 주인은 본래 관중인데 WWE가 하는 프로 레슬링 역시 스포츠의 형태를 지니고 있음이 이로써 증명되었다.



억지로 방송은 이어가고 있고, 시간은 흐르는데 WWE는 레슬매니아를 취소시키기는커녕 최소 진행 인원만 남긴 채 무관중 형태로 진행하려 하고 있다. 당초에는 코로나 19의 확진자가 나온 탬파 주에서 행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기존 선수들을 연습시키거나 신인을 양성하는데 요긴한 장소인 올랜도에 위치한 퍼포먼스 센터에서 생방송으로 개최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허나 이마저도 녹록지 않아 지금은 녹화 중계로 재변경, 오늘 보게 된 뉴스로는 레슬매니아 36의 대진 대부분을 녹화 완료했다고 한다. 세상은 이례 없는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WWE 역시도 전신인 WWWF 때부터 10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경험한 적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나 마나 한 소리이고, 갖나 마나 한 미련이지만 선수들 대부분과 팬들은 레슬매니아 36가(이) 미뤄지길 바라고 있다. 경기 퀄리티에 대한 우려는 물론이고 WWE 내의 구성원 모두가 흥이 나지 않음은 당연지사일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진행시켜야 하기에 개최를 강행하는 오너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다 하더라도 참 많이 아쉽고 아쉽다.



명색이 레슬매니아이기 때문에 요지부동이었던 그간의 타이틀 전선에도 변화는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드류 맥킨타이어는 파트타임 챔피언 브록 레스너를 상대로 선전할 것이다. 생애 첫 WWE 유니버설 타이틀 획득의 순간이 비록 무관중 레슬매니아라고 해도 힘내 주기를…



바라기는 레슬매니아 36를(을) 두고 호언장담했듯 요 근래 치러진 RAW나 스맥다운 같은 위클리 쇼와 동일한 퀄리티가 아닌 이름에 걸맞은 퀄리티를 보여주길 바란다.



PS 01. 핀드와 상대하는 존 시나… 언더테이커처럼 레슬매니아 마지막 무대일 텐데 왕년의 보여준 철인의 모습을 보여주길.



PS 02. AJ와 격돌하는 언더테이커. 상대가 스팅이 아니라 아쉽다. 서바이버 시리즈 2020에서 두 사람의 재회를 기대한다!



[본 칼럼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wwe.com으로, 사진 이미지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WWE에 있습니다.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It is not used for Profit. Image Courtesy of © WWE.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PgR21.com, 브런치, Wmania.net 에도 게재됐습니다.



내용 추가

이 글을 작성하고 하루 뒤 그러니까 오늘 속보를 보게 됐는데요. 로먼 레인즈의 레슬매니아 36 결장 소식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로먼의 경우 작년에 백혈병이 재발했고, 극적으로 회복해서 레슬링 경기를 소화할 정도가 되긴 했지만 실은 완전 회복이 아니라 평생 약을 복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그러니까 백혈병을 지닌 채 생의 여정을 걸어야 하는 상태입니다. 타 선수보다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로먼에게 레슬매니아의 일정 강행은 너무 위험합니다. 이런 리스크를 감내하기에는 무모하다는 판단하에 로먼 레인즈 본인이 수뇌부에게 이런 사정을 알렸고, 수뇌부도 이에 동의해 그는 올해 레슬매니아에 결장하게 됐습니다. 아쉽지만 현명한 그의 용단을 존중하며, 쉽지 않았을 텐데 그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속보를 접하기 전에 직접 소식을 전해주신 PgR21.com의 회원 님들과 Wmania.net의 스태프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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