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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Aug 06. 2015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소통과 현실, 그리고 장애

혹시라도 우리 모두의 편견이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것은 아닐까?

만들어 내는 게임마다 히트작이 되는 신기한 개발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희대의 역작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는 2005년 1월(국내 기준) 오리지널이 론칭된 이래 현재까지 5개의 확장팩을 더 출시하면서 MMORPG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 오고 있다. 오죽하면 ‘기승전와우’란 말이 있겠는가? 



이처럼 MMORPG의 독보적 강자이자 명맥을 잇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와우는 세계관이 방대하고 지역도 말할 수 없이 넓다. 단적으로 보면 와우는 자신의 캐릭터 하나만을 육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대한 세계관이 하등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이 게임 내의 콘텐츠는 하나도 외면할 만한 구석이 없다. 왜냐하면 넓은 시야로 봤을 때는 유저와 유저간의 싸움이나 경쟁이 아니라 진영과 진영 간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들 진영은 호드(Horde)와 얼라이언스(Alliance)로 나뉘는데 이렇다 보니 와우에는 재미있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호드와 얼라이언스를 막론하고 상대 진영의 지역으로 침입하면 그 지역에 있는 유저뿐 아니라 npc 마저도 공격태세를 갖춘다는 점과 서로 다른 진영에 유저들이 채팅을 주고받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점. 즉 다시 말하면 같은 지역에 있어도 다른 진영 소속이란 이유 때문에 서로 간의 소통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채팅을 해 보면 전혀 알 수 없는 꼬부랑 글씨로 표시된다. 



나는 이 같은 시스템에 큰 흥미를 느꼈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 같아 보여서 말이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는 이른바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흩어졌는데 그 시작이 언제이든 현재 인간의 언어는 제각각이고 알아듣기 힘든 국면에 처했다. 이를 와우라는 하나의 게임이 착안했다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신선하게 보였다. 하지만 어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비단 국가의 다름으로 인한 차이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개인의 생각에 따른 차이, 살아 온 환경 그리고 문화를 얼마나 누리느냐 등도 소통의 차이로 번질 수 있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나 하나 챙기기에도 버거운데 타인을 배려하고 신경 쓰며 사는 것. 이것이 얼마나 인생을 낭비하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입을 굳게 닫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소통은 언제나 ‘함께’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타인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인데 과연 그것이 얼마만큼 내게 유용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를 상황이다. 



그러나 소통의 부재가 언어의 다름이든 아니면 여유 없음에서 파생되는 것이든 여기 소통의 장(場)과 단절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들. 거리를 거닐다 보면 많지는 않지만 매번 보게 되는 사람들. 그들은 나무와 쇠로 만들어진 클러치를 짚고 다니기도 하고, 휠체어를 타거나 스쿠터를 이용해 다니기도 한다. 모두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장애 경중(輕重)을 떠나 자신이 가능한 능력만큼 열심히 살아간다. 



그들은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이 감내해야 할 시련을 그저 묵묵히 인정한다. 내가 안고 있는 이것이 팔자(八字)려니 하며 쿨하게 지내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약간은 지나친 낙관론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하게 아파해 왔고, 눈물을 뿌려 본 자들이다. 물론 그 아픔이 비록 지난 과거가 아닐지라도 지난날의 경험이 그들에게는 큰 자양분이 된 것이다. 



어쨌든 그들 마음 가운데 존재하는 용납의 크기가 어떠하든지 간에 세상은 아직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마주하기를 거부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려워한다는 말이 더 옳겠다. 그렇다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장애와 장애인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는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지어 왔다. 다양한 생활 방식은 인정해야 하고, 요즘은 동성 간의 사랑 또한 인정해야 한다면서 직립 보행을 하는 자는 옳고 그러지 못하는 자는 배척한다. 하나 잊고 사는 것은 비장애인이 안경을 쓰는 것은 멋지고 스마트해 보이는 광경이고 시각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여러 일을 하는 것은 불쌍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안경을 쓰는 것은 시력의 저하 때문이므로, 이 역시 장애의 범주로 봐야 하지만, 그렇지 않는다는 점을 비춰볼 때 모순이다. 안경은 이해의 영역에 시각장애는 틀린 영역에 놓여 있는 셈이다. 



둘째는 이런 모호한 다름과 틀림의 경계가 무시로 변형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었던 병신(病身)은 원래 나쁜 의도로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점차 사람들을 통해 비하와 욕의 형태로 변모해 왔으리라 생각한다. 아까도 이야기한 스마트함과 장애의 모호한 경계는 결국 동일한 가치를 가진 어떤 사람을 무시하게 됐고, 이는 오늘날에는 직접적 표현을 삼가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엔 병신의 잔재가 존재한다. 언급한 두 가지의 이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접점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독소이다. 그 독소가 얼른 제거되어야만 그릇 된 관념의 정체(停滯)를 막을 수 있다. 



그릇 된 관념 없이 모두를 동등하게 생각한다면 장애인과의 관계를 망설일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관계를 통해 더 큰 배움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저해시키는 가장 궁극적인 것은 어쩌면 우리의 언어도 아니고, 상황도 아닌 우리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커버 이미지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5번째 확장팩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의 월페이퍼이며 해당 이미지의 저작권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 있습니다. 아울러 비상업적 목적임을 알립니다. 혹여 상업 목적으로 글을 사용하게 될 경우 이미지는 제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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