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지독히도 로봇을 좋아했던 나는, 시장에 위치한 문방구에 어머니께서 매일 들러주시길 바랐다. 그리고 TV에서 보았든, VHS 테이프로 보았든 인상적인 로봇이 있으면, 잊지 않고 머릿속에 목록을 만들어 그 로봇의 장난감만 샀다. 다른 기종(?)을 골라도 되지만, 고지식하게 그 로봇들만 골랐다. 그렇게 고른 로봇들이 쌓여 꽤 많은 양이 됐지만, 따지고 보면, 도색과 크기가 다른 같은 로봇들…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으니 다르게 보낼 만 한데 자라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워크래프트Ⅱ를 접하게 된 이후 RTS에 푹 빠지게 되었고, 그 불씨는 오롯이 스타크래프트로 넘어갔다.
그건, 내 고질적인 외골수적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마우스만으로도 할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이건 이면이 있다. 남들은 스트리트 파이터와 파이널 파이터, 그리고 기타 기깔나는 대전 액션 게임들을 오락실 한켠에서 허세도 섞어가며, 주야장천 할 수 있었지만, 나는 아빠 무릎에 앉아 그것도 반 이상은 도움받아가며, ‘아웃 런’을 즐겨야 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재미있는 게임이다.
한 손이 좋지 않으니, 그야말로 그림의 떡… 당연하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곧 나온다는 사이버펑크 2077이나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등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유행하는 어몽 어스, 폴 가이즈도 물론… 그래서 유저들로 하여금 사골국이라며 지독하게 욕먹는 피파가 고맙고, 홈런의 짜릿함 선사해주는 수퍼 메가 베이스 볼 시리즈에 감사하다.
누구에게든 물어보면, 스타크래프트가 인생 게임이란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렇게 이야기하는 화자가 누구시든 그대보다도 더 간절하고 확고하게 스타크래프트가 인생 게임이라고… 아니, 그랬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게임이란 걸 하면서 진짜 행복을 느꼈고, 진짜 열정을 뿜어낼 수 있었으니까.
프로게이머 임요환이 나를 스타크래프트에 더욱 오래 머물게 했고, 그가 오롯이 스타크래프트를 흡수했듯, 나 또한 그런 심정으로 매일을 살았다. 그리고 그가 스타크래프트Ⅱ로 무대를 옮겼을 때, 오랜 고민 끝에 나도 그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현실적으로 같은 무대에 설 순 없겠지만, 그래도 땀 흘리는 예선장의 현장에서 도전이나마 해보려 했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화하기 위해 그리했다.
역시나 현실은 바닥 언저리였지만, 확실히 스타크래프트 때보다는 불특정 다수와 겨뤄 승리 횟수가 많아졌고, 실버등급 탑까지 올라가 이내 골드 언저리까지 넘보았다. 결국 골드행은 못 이뤘지만 승리 한 번, 한 번이 정말 짜릿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밑바닥이라고 일컫는, 이른바 브론즈, 실버, 골드 등급 쓰레기인 나였지만, 그런 나마저 받아준다고 했던 당시의 GSL이 감사했다.
(채정원 본부장님 고맙습니다)
그러나 타인에겐 정말이지 식은 죽 먹기의 꿈이 여러 사정에 의해 이뤄지지 못했다. 그때의 내가 현장에 나타났다면, 비뚤어진 몸이지만, 열정을 불태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난 지금 그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을까… 가끔 상상해 본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프로게이머의 열망을 할 수없이 뒤안길로 내어버리고 이젠 글을 쓴다. 이전보다 더 큰 열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잘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포기하진 않으련다. 1년밖에 남지 않은 서른의 날들에 언젠가 무심코 래더를 돌려 보았다. 공허의 유산 래더 경험은 거의 전무한 가운데 들어간 배치고사- 그 결과는 2승 3패였다. 브론즈 중간이었다. 이후로는 매일매일 살아내는 데에 여념이 없어 못 하고 있었다. 어디까지 갈는지 궁금하긴 한데 아마 자유의 날개와 군단의 심장 초기 당시보단 형편없겠지 싶다. 몸이 그때보다 좋지 않으니 당연하다. 나이가 서럽다. 크크…
아무튼 그렇게 내 열정이었던 스타크래프트가 더 이상의 유료 콘텐츠는 내놓지 않는단다. 정확하게는 스타크래프트Ⅱ의 얘기다. 어찌 보면 스타크래프트 시절보다 더 절치부심했던 추억들이 함께 있는 게임인데, 한편으론 씁쓸하다. 그들만의 리그이니, 망한 게임이니, 숨이 끊어졌다느니 하는 여러 조소들이 있었지만 나름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과거의 정열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시리다.
옆 지기였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의 전철을 밟는 것뿐이지만, 또한, 더 이상 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지만, 전작인 스타크래프트의 역사에 필적하길 바랐는데 아쉽다. 뭐, 인간 사는 세상사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라서 어떤 것이든 예단하면 안 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눅눅해지다 말라버린 내 가슴이 가랑비 내리듯 눈물에 젖고 있다.
16th Oc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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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yerS_`BoxeR` & T.killer
본문 이미지 = 스타크래프트Ⅱ 월페이퍼.
출처 = 스타크래프트Ⅱ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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