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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Oct 05. 2015

교과서… 유성매직… 그리고 아버지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된 아버지의 마음 두 가지

어릴 적…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 딱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않고 꼽을만한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나는 여러 권의 교과서 중에서 시간표에 따라 꺼내는 걸 꽤 어려워했었다. 책을 꺼내는 행위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나도 그랬나 보다. 다만 여러 권의 책들 중에서 하나를 꺼내는 게 많이 어려웠다. 때문에 나와 짝꿍이 된 친구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 지금도 미안하다. 



‘어린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아니 당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하는 자립적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재활(再活)을 강조했다. 그런 이유로 웬만하면 모든 일을 스스로 할 것을 권유했는데, 하다못해 교과서 하나도 못 꺼내니 선생님께 혼나는 건 당연하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나는 건 싫었다.  



하루는 짝꿍에게 가만히 있어보라며 안심시키고는 책 꺼내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 안 하고 모든 책들을 다 꺼냈는데 수업할 책만 저 밑에 박혀서는 나를 골탕 먹였다. 마치 말도 못하는 교과서가 내게 메롱하고 약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수업할 책 꺼내기에 성공했지만 이게 웬걸?… 책상 한 가득 교과서 산이 쌓였다. 



그리고 난 결심했다. 책을 쉽게 꺼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 내기로… 내 이런 상황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께선 모든 책의 하단에 교과목 이름을 쓰기 시작하셨다. 실험관찰은 ‘실관’으로 산수 익힘책은 ‘산익’으로 말이다. 그 후부터 아버지께서는 내가 매년 교과서를 새로 받으면 늘 유성매직으로 일일이 교과목의 이름을 쓰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 덕분에 난 책 하단부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을 때보다 훨씬 잘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책상 정리는 여전히 젬병인지라 여러 책이 뒤 엉켜 있었다는 것 빼놓고는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단 한 번도 빼 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정성이 눈물겹다. 그리고…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된 아버지의 마음 두 가지 


1.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제 생각과는 다르게 사소한 것인데도 잘 되지 않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하고 마음 아프셨겠지? 

2. 그런 위로의 마음으로 교과목의 이름을 쓰실 때 그 마음 그대로 내게도 닿기를 바라셨겠지? … 그리고 그렇게 내게 닿은 당신의 마음이 유성매직의 성질처럼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셨겠지? … 물론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그걸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난 그 정성을 어찌 다 갚지?



커버 이미지는 “Pixabay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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