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지우려 하면 종이가 찢긴다
진한 잉크보다
투박한 연필이 좋은 이유는
지우개로 깨끗이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일 거다
잘못된 흔적을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알다시피
아무리 최고급 지우개라고 해도
같은 곳을 계속 지우다 보면
결국 쌓이고 쌓인 연필 자국은
흐릿하게나마 남는다
흐릿하게 남은 자국을
억지로 지우려 애를 쓰면
이내 애꿎은 종이가 찢기고 만다
그리고 늘어가는 건 지우개 가루…
잉크로 쓴 글자 역시
수정액이라는 대안이 있지만
지우려 애쓴 티가 어쩔 수 없이 나듯이
인생도 그렇다
내가 살아 온 이 길을
깨끗이 지워낼 수 없다면
뭣하러 감추려 하겠는가?
상처는 당시엔 부끄러움이지만
훗날엔 나름의 추억이 되고 교훈이 된다
굳이 숨기려 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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