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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티 Yaaatii Feb 11. 2022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

 제주도에서 살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흠모하는 그곳. 세음절 발음 만으로도 감탄과 동경을 자아내는 여행지, 제주도. 본격적인 이주 전에도 여행지로 많이 와 보고는 했던 그 제주도. 


 많은 면에서 부족하기만 했던 '사업' 또는 창업이란 것을 5년 만에 접었다. 투자금과 집을 담보로 융통했던 자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안다. 마지막으로 융통한 대출금을 어떻게 써 버렸는지. 나만 기억한다.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절치부심하여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투자자들을 만나고 다녀봤지만, 적당히 비싼 술자리로 대신하는 완곡한 거절과 중심을 잃은 나의 허세가 지독하게 미운 어느 밤도 있었다. 그날 밤에 쓰디쓰게 벌을 받았다.


 빚잔치를 끝내고 겨우 남은 얼마간의 돈으로 가족들 전체가 이사를 해야 했다. 스스로 장만한 수도권의 작은 집을 법원이 갈가리 찢고 금융기관들이 나눠서 가져갈 때, 막막했다. 


 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줄로만 알았다. 나의 하느님께서 도우신 것인지, 딱 이사할 만큼의 돈이 남았다. 아이들의 순진한 웃음을 지켜 줄 공간으로 이사할 만큼의 돈만. 


 경제적으로 나락에 떨어졌을 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제주도로 이사했다. 살길이 제주도에 있었다. 여기에서 재기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뿔싸,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지금 이 글은 그 재기하겠다는 '다짐'마저 성급한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반성하는 글이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다. 제주도가 특별하게 내게 많은 것을 거저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제주도가 품어 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뭔가를 더 얻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제주도를 자본주의적 이윤 활동의 '도구'로 삼다니,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를 나란 사람의 인생을 재기시키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닌, 보다 더 올바른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한 '친구'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제주도의 곳곳에서 본 것들과 버무려진 성찰의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곳에서 나는 작은 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곳에서 나는 가족의 평화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아이들의 순진한 웃음이 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느낀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생각도 깊어진다. 관광객들이 아무 의식 없이 버린 쓰레기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물과 전기와 가스 같은 공공서비스가 비싼 지역이니 절약하는 방법도 익힌다. 무엇보다, 이 소비지상주의의 작동원리를 비판하는 시선이 생긴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우쭐거리는 여행객들을 보며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는, 얼마나 무지했던 자본주의의 노예였는지도 깨닫는다.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도 깊어진다. 그것은 학문적 성찰이다. 그리고 실천에 대한 방법도 모색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제주에서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낀다. 다행히도 책을 사느라 또 한 번의 자본주의 동력을 작동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전에 사 둔 마르크스의 한국 최고 권위자의 책이 벽돌처럼 서재에 박혀 있다.


 사람들과 더욱 겸손한 태도로 관계 맺는 법에 대해 지속해서 고민한다. 계몽보다는 공감과 연대를 하는 지성인이 되고 싶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영험한 한라산을 지키고 싶고, 끔찍했던 4.3의 장면을 모르거나 잊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싶다. 


 변방으로 치부되고는 하는 '섬'이라는 공간에서, 변방과 경계에 선 많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쓰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솔직해지고 싶다. 진리를 깨우치고 사회를 살아가고 사람을 알아가고 제주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들에 대해. 


 때로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때는 풍광이 좋은 장소에서, 그 어느 때는 읽고 있는 책을 통해, 사이사이에 만들어가고 있는 서점이나, 보다 더 진정성을 담은 브랜딩 사업으로서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어느 때는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날도 있겠고 어느 때는 다소 모순되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솔직한 제주도에서의 삶과 생각의 것들에 대해서. 


 그런 이유들로,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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