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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티 Yaaatii Aug 22. 2022

제주에서 살면서 바다를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바다

 혼자서 동해 바다를 다녀 온 적이 있다. 그 때 정동진 역 앞 모래사장에 앚아 오래도록 밤바다를 바라봤다. 검은 바다가 두려웠다. 한 편으로는 그 바다로 들어가고 싶었다. 무언지 모르게 따스함과 안도감을 줄 것처럼 느껴졌다.


 수첩을 꺼낸 후 메모를 했다. 검은 바다를 보면서 들었던 양가적 감정에 대해 미디어에서 묘사하곤 하던 바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던 이들의 감정에 대해.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아마도 그 때 처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자살으로의 충동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때는 에밀 뒤르켐을 몰랐지만.


 강릉

 동호회 친구들과 1박2일 출사 여행으로 강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 있었던 작은 일화들은 내 인생의 복선이었다. 장난처럼 설정해서 찍은 숙소 앞에서의 사진, 새벽 기상을 위해 설정해 둔 휴대폰 알람 등. 강릉, 하긴 강릉에 추억이 없는 사람이야 있겠냐만!


 보성

 혼자서 남해의 보성을 다녀온 적도 있다. 보성 녹차밭을 둘러 보고 해변의 식당에서 술을 마신 다음 해변에서 서너시간 잠을 잤다. 어부 할아버지에게 배를 태워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아쉽게도 탈 수 없었다. 


 태안

 보성의 어부 할아버지가 배를 태워주지는 않았지만 배, 많이 타봤다. 배낚시 모임이 있어서 반기에 한 번씩 꼬박 탔다. 서해의 태안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두 시간 정도 나간다. 처음에는 중국까지 간 것이 아닌지 걱정도 했다. 망망대해의 무인도를 바라보며 낚시를 했다. 바다 위 배에서 방금 잡은 물고기를 회로 떠 먹는 그 낭만이란!




 괴상한 상상이나 판타지를 많이 갖고 있는 편이었는데, 푸른 바다를 보면서 연인과 에로틱한 로맨스를 벌이는 걸 상상해 보고는 했다. 더러 숙박업소 주인들 중에서 나와 비슷한 판타지를 갖고 있는 걸 SNS 상에서 목격할 때가 있다. 바다가 보이는 통유리 숙소 안에 월풀 욕조라니!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동해 바다는 낭만이었다. 일을 핑계로, 여행을 구실로, 혼자서 답답할 때 사무실을 나와 혼자 운전해서 동해 바다를 다녀 온 적도 꽤 된다. 


 아직도 강문 해변의 전복 해물탕 집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제주

 제주도로 이사했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좋냐고 묻는다. 여행과 이주는 다른 성격을 가진 걸 알만한데도 여행으로만 생각하는 걸 타박할 수는 없지. 사실 좋기도 하다. 바다를 자주 볼 수 있으니. 실제로 바다 앞에 살기도 한다. 삼양검은모래해변이 집 앞이다. 


 제주 시내 권역의 동쪽 끝에 자리한 해수욕장이라 사람이 많을만한데도 의외로 한산하다. 더 시골로 들어가야 있는 함덕이나 월정리, 김녕 보다도 한산하다. 덕분에 상권도 작다. 주민 입장에서는 더 좋다. 한산한 해변을 산책할 수 있으니까. 


 바다를 매일 볼 수 있어서 좋다. 


 잔잔한 푸른 바다도 좋고 구름과 바람이 많은 날의 회색 바다도 좋다. 옥빛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어선들이 줄 지어서 불을 밝히는 검은 바다도 좋다. 파도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도 좋다. 불멍이 있다면 바다멍도 있다. 바다멍을 하고 있으면 한 없이 좋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중에서 '대양'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4행으로 된 간단한 시이다. 간단한 시이지만 시가 담은 세계는 넓다. 그 시를 암송할 때는 한 마리 새가 되어 태평양을 횡단하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바다 앞에서는 곧잘 그 시를 떠올린다.  


 시규어 로스Sigur Ros 라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록밴드가 있다. 그들의 음악 중에서 Glosoli라는 음악의 뮤비가 있다. 아이들이 섬을 뛰어 올라가다가 해안의 높은 절벽에서 뛰어 내린다. 그리고 그들은 바다 위를 날기 시작한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뮤비의 장면이 떠올라서 뭉클해진다. 


 시규어 로스 Sigur Ros의 Glosoli 듣기 


 바다 앞에서는 '정밀아'의 '바다Ⅱ'를 듣기도 한다. 이 음악도 바다 앞에서 들어야 하는 음악이다. 하긴 정밀아의 모든 음악들이 바다 앞에서 어울리기는 하지만. 


 정밀아의 바다Ⅱ 듣기


 제주도 여행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겠다. 어디 어디 보러 다니는 여행도 좋지만, 한적한 해변에서 반나절 정도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말이다. 담요와 와인 한 병과 블루투스 스피커를 준비하시라. 정밀아의 음악을 들으면서 바다멍을 하시라, 꼭! 


 인생과 사랑과 사람과 진리를 사유하시라, 제주의 바다에서.


 제주의 바다 중 바다멍하기에 어디가 제일 좋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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