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아는 에고가 아닌 깨달음

자꾸만 나 스스로 부끄러워지고 작아지는 이유

by 올바른

멋진 신세계 저자 올더스 헉슬리가 말하기를 진정한 자아란 에고(Ego)가 아닌 '깨달음'이라고 한다.


인생은 정반합.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나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깨달음의 시작은 수용인데 에고가 강하면 나를 부정하며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나의 논리 체계는 곧 나이기 때문에 강한 에고를 가진 사람은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하고 이를 부정하며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나의 불편한 에고를 겪었던 일들을 나열하면서 어떤 식으로 자아를 강화해 나갔는가에 대해 적어본다.


“에고는 가치관이 아니다”

중학교 선도부를 할 때에 교문 앞에서 교칙을 어긴 학생들을 잡으며 벌점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럴 때면 나랑 친한 친구들은 좀 봐주기도 하곤 했었는데 나와 같이 있던 선도부 친구는 가차 없이 잡아냈다. 마음속으로는 그 친구처럼 나도 교칙을 어긴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나와 친한 친구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할까 봐, 나의 명예와 안전을 우선시했지 않았나.


역설적이게도 나를 내려놓아야만 진정 내 가치관대로 행동할 수 있다. 나 스스로 A라는 행동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에고, 즉 나라는 존재의 명예와 안전을 위해 그것을 포기하게 이른다. 에고라는 자의식을 버리고 진정 옳은 게 무엇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씩씩대는 질투심”

나 아닌 누군가가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하고 손뼉 칠 수 있나? 원래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렇다. 예전엔 누군가 무엇을 했다고 하면 괜히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조급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그것을 축하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게 나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느꼈고 긍정적인 피드백은 진심으로 상대방을 축하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최근에 느낀 감정 때문에 흥미로웠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칭찬하니 속으로 나는 씩씩대고 있었다. 나도 사실 공감했지만 괜한 질투심이 폭발해서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다. 그냥 맞다고 맞장구를 치면 되는 것을 괜히 반응하지 않거나 아닌 척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 정말 창피하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에고가, 내 본능이 내 지위를 보호하고자 다급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내 지위는 더 낮아지고 결국 버티다 파멸했다. 혼자 손뼉 치는 법은 알았지만 같이 손뼉 치는 법은 몰랐던 것이다. 이런 걸 스스로 꺠우쳐야한다는 것도 참 안타까웠다.


"나를 손절한 친구"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까지 줄줄이 읊어주는 경우가 있다. 그때 당시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남들이 보기엔 아니었던, 깨달음도 없이 에고만 막 형성되던 시기에 했던 행동들이다. 그래서 내가 유난히 못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악한 의도를 가지고 무언갈 저질렀다기보단 그 행동들이 끼칠 영향을 미처 알지 못했다가 더 맞을 듯하다.


어릴 적 친구, 성인이 되고 만나서 사실할 게 뭐 있나. 만나서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옛날에 너는 어땠느니 저쨌느니 그렇게 놀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손절을 선언했다. 서로 인사는 해도 어디 가서 아는 척하지 말라나 뭐라나. 오랜만에 닿은 연락에 화를 내니 참 당황스러웠다. 예전 같으면 속에 뭔가 끓어오르면서 억울했을 텐데 그냥 그 친구의 에고가 나를 버린 거구나 싶었다. 나도 인사하며 아무런 집착도 없이 이해하며 그 친구를 보내줬다.


"일하다가 갑자기 이 글을 쓰는 이유"

클라이언트에게 묵직한 메시지 세 방을 전송하고 왔다. 그래서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일상에서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되면 온몸을 감싸는 불편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응대해야 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이미 그들에게 밀린 일들에 대한 죄책감과 내 어쩔 수 없음에 순탄하게 가지 못하는 상황이 참 불편하다. 어찌 보면 나는 내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서 이리 고통받아야 하나 싶다.


나는 이 불편한 감정들이 다 에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점을 주지 않았던 선도부처럼 나도 상대방에게도 결국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데 망설여지는 이유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내가 불편하기 싫어서가 맞는 말이다. 행동하기 전까진 다 예상일 뿐이고 그 이후는 대응의 영역이니까. 일하는 선택지에 있어서 비교우위가 아닌 후회할 것을 예측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것도 없다.


"내 안에는 언제나 에고가 있어"

에고는 나를 자꾸 감추려 하지만 이겨낼 때 오는 압박감이 내 스킬을 더 섬세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긍정적인 결과물을 위한 섬세한 작업은 결국 에고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온다. 피드백이 돌아오면 에고는 깎이고 결국 내 스킬이 된다. 졌을 때도 결국 나중엔 깨닫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이 불편한 걸 즐길 수 있도록 내 안에 에고가 있음을 인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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