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병인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시류의 일부였다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하입보이는 뉴진스 노래에 나오는 '매력적인 남성'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하입 보이라고 자칭하는데 그 이유는 언제나 하입(Hype) 위에 있기 때문이다.
하입은 시류이고 유행이고 그것이 실체가 있고 없고를 떠나 사람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무언가다.
나는 유행을 즐기는가? 나의 취향과 가치관은 보통의 사람들과 얼마나 닮았으며 그것을 인지하는가? 네가 좋아하는 게 그게 진짜 맞아?
"나는 이런 게 좋아"
나는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친구들이 아이돌 노래를 들을 때 옛날 발라드를 듣고, 힙합을 들을 때는 밴드 음악을 들었다. 남들이 어느 학교에 가고 전공을 선택하고 직장을 가고 하는 데에 고분고분 따르고자 하지 않는 어떠한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만, 나는 내가 하입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홍대병 아이인 줄 알았는데 내 삶은 하입 투성이었다.
나는 이런 게 좋아라고 하며 찾아다녔던 것들이 사실은 되게 수동적인 결과였다.
내 삶에서 가졌던 지향점들이 내가 무언가를 직접 탐색하고 사고해서 얻은 프로액티브한 영향이 많이 낮았구나 하는 생각에 빠졌다.
"가슴 뛰는 나의 꿈들이"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참 다양한 꿈들이 거쳐 갔다. 축구 선수, 코미디언, 래퍼, 요리사, 그 외의 여러 가지.
축구선수는 2002 월드컵 때 있었던 신드롬에 마구잡이로 생긴 축구교실과 방과 후 수업들이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반에서는 공 좀 차던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버지께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림도 없다고 빠르게 마음을 접어 주셨다. 역시나 반골 기질이 있었는지 바로 접지는 못하고 옆 학교 친구와 대결을 해 보고는 나는 아니구나라고 깨우쳤다.
그때 당시에는 개그맨, 요즘 말로는 코미디언인데 아마도 어렸을 때 개그콘서트의 유세윤을 보면서 아, 저 직업 참 매력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 당시엔 모두가 주말엔 무한도전과 1박 2일을 보고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마무리를 했기에 내 삶의 대부분이 TV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나 싶다.
축구 선수와 개그맨은 어릴 때 '너 뭐가 되고 싶니?'에 대답하려고 스쳐 갔던 꿈이라면, 래퍼와 요리사는 내가 내 진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에 꿈꾸었던 것들이다. 난 이게 되고 싶어! 하며 열정을 가졌던 것들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서 했다기보다는 내가 발견한 나만의 취향이었다. 다행히 재능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것이 직업이 되고 비즈니스가 되진 않았지만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남겨주었다. 내가 래퍼가 되겠다며 카피랩을 하고 가사를 쓰고 했던 다음 해에 힙합 서바이벌 방송이 유행을 하면서 주변에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내가 그것을 리드하게 되는 그런 식이다. 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유행이 되네.
"분명 우연히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 해에는 몸이 안 좋아서 유일한 취미인 운동을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때 얌전히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 보니 요리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요리의 맛을 내고 섬세한 조리 과정을 탐구하면서 정말 매력이 있다고 느꼈고 분자요리가 발전했지만 아직 여기엔 실험할 것들이 더 많이 넘쳐나는 영역이라는 생각에 호기심이 들었다. 실력은 여러 자취하는 사람들 수준에 미치지만 연구 쪽으로 파고들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르꼬르동 블루, 츠지요리학교나 대학원 같은데 진학하는 방법들을 알아보았다. 그러고 나서 1년 뒤에 요리서바이벌이 유행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며 즐거운 추억을 쌓있다
처음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재작년, 작년 러닝 유행이 돌기 시작했을 때다. 옛날에도 러닝을 즐겨했었지만 아 요즘 러닝을 좀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느끼고는 다시 러닝이 막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유행을 하네?"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거 내가 시류에 편승하는 사람인가?라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나도 어쩌면 이 거대한 시류 속에 살고 있구나. 다만 미디어에 크게 노출되는 것보다는 시차가 있을 뿐.
"근데 좋잖아? 어쩌면 나는 하입보이"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콘텐츠, 꿨던 꿈들을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그것을 스스로 사고했다고 느끼지만 생각보다 상당 부분 나에게 주입하고자 노력한 미디어의 자극에 의했지 않았을까. 어릴수록 단지 트래킹이 더 쉬울 뿐이다.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명확한 것들이 있다면 가면 갈수록 어느 순간 우연히 마치 인셉션을 당한 것처럼 충동적이라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우연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영향력도 없는 계정에 생각을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이 마음도.
대부분의 결과는 좋았다. 미디어나 권력을 통해 아무리 주입을 시키더라도 자유민주주의 환경에서는 대중의 경험이 기능적으로 이따르지 않으면 유행이 될 수 없다. 나는 그 경험이 처음에는 외부에서 의미가 부여되었겠지만 결국 기능적으로 좋게 작용했기에 그것을 따랐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본업도 내가 1년 정도 앞서갔던 하입 본능 덕에 발을 일찍 들이게 되었고 수혜를 먼저 받을 수 있었다. 내 취미들이 유행이 되면 나야 좋지. 모르겠으니 과하게 의식하지 않고 그냥 즐기련다. 하입보이 나는 원해.
"하입을 만드는 사람들"
하입을 만드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과대광고와 허위광고로 대중을 속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논란이 되어 법제화도 되었던 뒷광고. 말 그대로 인플루언서인 사람들에게 광고가 아닌 척 좋은 경험을 공유한다면 사람들은 그 기능을 믿고 소비하게 된다. 한국 시계 업체가 스위스에 있는 법인과 실체 없는 MOU를 맺고 스위스제 시계인 척을 한다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구매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은 지속될 수 없고 기만하는 의도가 있는 것들은 법으로 제한될 것이다.
진짜들은 여러 이해관계를 엮어 상호작용을 만든다. 그 구조 안에서 누군가는 권력을 얻고,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선한 영향력을 전달해서 좋고, 마지막엔 대중의 합리적인 소비를 이끈다. 프로파간다의 저자이기도 한 PR 전문가 버네이스는 그 끝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보이지 않는 정부"라고 칭했다. 대중의 심리를 이끄는 소수의 사람들이 지속적 설파(continuous interpretation)와 우월성 발현(dramatization by highspotting)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된 행위를 진행하여 대중의 심미적, 경쟁적, 군집적, 속물적, 과시적 또는 모성애적 동기를 이끌어낸다는 것.
"결국에 남는 건 내 후기"
배신감을 느끼고 시류에 어떻게든 내려가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순 없다. 의도적 역행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 에너지를 굳이 반대 방향으로 쏟을 필요는 없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 또한 어느 하나의 시류일 수도. 이를 의식하는 게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고 결국 생각할 건 내 경험이다.
나는 이게 왜 좋았지? 이 좋았던 시간이 나한테 기능적으로 다가온 건 무엇일까? 철학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냐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좋냐에 대해서는 별개로 하고, 그저 나를 찾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좋은 게 좋은 거지'와 같은 '의미적으로'로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아니라 진짜 진짜로 나에게 '기능적으로' 좋았던 건 뭘까 고민해 볼 수 있다. 나는 러닝을 하니까 아침이 개운하고 살도 빠져서 일상이 편해. 요리를 하니까 외식 비용도 아끼고 친구들과 집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삶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후기를 남길 수 있는지 잘 고민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