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으로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gpt야 이거 좀 알려줘"
요새는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ChatGPT한테 물어보면 되니 세상 참 편하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다가도 Ctrl+C, Ctrl+V 하면 코드를 만들어주어 개발자 팀원 없이 제품을 만든다. 아니 오늘은 심지어 기계를 조립하는데 사진을 찍어서 이게 무슨 버튼이냐고 물어보니 찰떡 같이 대답해서 날 이해시키더라니까...
지금의 AI는 모든 전문 지식을 두루 갖춘 최상급 비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뭐든 공부를 하지 않고 뇌를 빼고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우리는 이처럼 지식을 외부에 기록하여 저장해 두었다가 그것을 끌어다 쓰는 형태로 발전해 왔는데 이를 지식의 외주화라고 한다. 나는 개념을 공부하며 얻는 1)정보와 경험을 통해 깨우치는 과정에서 얻는 2)노하우를 통틀어 '지식'이라고 정의하겠다.
어떻게 보면 인류의 지식의 외주화는 꾸준히 진화해 왔고 개인적으로는 지금은 3단계쯤 되었다고 생각한다.
0단계: 해마
고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제자들과 함께 거닐며 연설과 토론을 하며 지식을 키워나갔다. 그러니 말로 표현해야 하는 수많은 지식들을 머릿속에 항상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절에는 글쓰기를 통해 지식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보다 머릿속에 기억하여 연설을 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곧 미덕이었다. 지식을 잘 기록하는 사람은 그저 받아쓰기꾼이었을 것이다.
1단계: 인쇄물
활자와 종이가 발명되면서 외주화의 1단계가 시작된다. 대량 생산으로 저가에 보급되는 책들로 인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간, 공간적 제약이 사라졌고 사람들이 지식을 말보다는 인쇄물로 전해지게 된 것이다. 재밌는 건 중세에 조판인쇄기법이 발명되어 책이 다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니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오직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인터넷, 스마트폰이 보급되는 현상처럼 꽤나 비판적이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지식을 기억하려 하지 않고 궁금한 게 있으면 책을 읽고 금방 휘발되어 버리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에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독서 인구가 바닥을 치는 것에도 참 안타까운 형국인데 책을 읽지 말라니... 지금의 발상과는 정반대 편에 있어 보인다. 온 세상에 수많은 양질의 책과 글이 난무하고 쏟아져 나오는 지금은 글을 읽는 연습을 하며 문해력을 기르고 지식의 습득 속도를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단계: 기억장치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외주화의 2단계가 시작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관련된 글을 검색하고 Ctrl+F를 통해 필요한 정보만 골라 효율적으로 취득할 수 있다. 또한 이를 정리하여 자신만의 문서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web2.0 시대가 온 이후로는 각자 개인의 수많은 지식들이 산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며 진정한 정보화 시대가 시작되었다. 당신은 검색엔진을 통해 인터넷상 수많은 파편화된 글들로부터 정보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한 글을 읽는 중에서도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연결되어 있는 하이퍼링크나 새로운 검색을 통해 다른 글로 넘어가는 등 폭넓은 탐구가 이루어진다. 단어 몇 개로 필요한 정보에 순식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지금에는 적절한 키워드로 정보를 빠르게 찾는 리서치 능력을 길러야 한다.
(지식 습득의 관점에서 책이 낫냐 인터넷이 낫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 갈린다. 책은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작가가 나열한 문장의 흐름과 각 주제의 맥락에 따라 높은 몰입도를 유지하며 동일한 텍스트 양에서 더 많은 지식이 머릿속에 남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터넷에는 글 중에 갑자기 링크가 붙어 읽던 글의 맥락이 다른 곳으로 튀기도 하고 컴퓨터에 수많은 창과 알림 등의 방해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3단계: AI
지금 우리 시대는 생성형 AI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ChatGPT. 이 비서는 내가 물어볼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전문가 수준의 대답이 준비되어 있다. 물론 구글 검색 결과도 전문가가 작성한 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것은 정확히 내 질문만을 위해 적은 글도 아니고 나를 위해 적은 글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 글로 인해 발생한 추가적인 질문은 받아주지 못하지 않는가? 지금은 질문을 잘하는 방법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ChatGPT의 가장 최신 모델은 ChatGPT-4o인데 우리가 질문을 전문가에게 하듯이 구체적으로만 한다면 전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공부해도 나보다 똑똑한 비서가 실시간으로 답을 주는 시대에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첫째로는 사고하는 능력은 지식에서 나오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것이 곧 유일한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AI한테 정말 다 맡길 수 있나요?"
아무리 초지능의 AGI가 등장한다고 해도 우리 인간은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아니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한들 법인 인감 날인 결정을 AI에게 시키겠는가? 당신은 대통령으로 AI를 선출할 것인가? 사실 넘길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는 우리 지식의 초월을 넘어 우리의 오감까지 속일 수 있는 휴머노이드가 등장하기까지는 어렵다고 본다. 아직은 그저 소프트웨어며 로봇이기 때문에 내가 죽기 전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바란다.
자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휘권이 있는 인간은 AI로부터 조언을 받고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이 AI에게 당신이 얼마나 의존적 일지와 받은 조언으로 얼마나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인지는 당신의 지식에 달려있다. 단적인 예로 물리학자가 물리학 논문을 읽을 때와 어린아이가 물리학 논문을 읽을 때 나오는 인사이트의 양은 어떻겠는가?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전반기에는 부족한 정보와 노하우를 쌓기 위해 '인식'에 뇌가 더 집중한다고 하고 후반기에는 경험을 통해 얻은 충분한 정보들을 연결하며 '사고'하는데 더 집중한다고 한다. 우리가 더 깊은 사고를 하려면 결국 머릿속에 많은 정보들이 연결되어 지식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답변을 얻고 그 안에 모르는 단어가 있다면 또 물어보고 검색하며 찾는데 시간을 쓸 것이고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지식 습득과 사고의 몰입도는 떨어질 것이다. 고로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쌓아두고 있어야 한다.
"남들도 다 AI 할 줄 안다고요"
당신이 ChatGPT를 사용하면서 글 한 페이지를 단 몇 분만에 적고 프로그래밍을 며칠 안에 뚝딱 끝낸다고 하면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당연한 이 이야기를 굳이 글로 적는 이유는 기술의 발전 속도 때문이다. 우리의 10년 전과 5년 전만 비교해도 소셜미디어의 급진한 발전으로 인해 정보의 투명성과 확산성이 커지면서 얕고 다양한 지식들이 순식간에 다량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나와 비교적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이치를 쉽게 깨우치는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물론 나이가 들며 지식이 쌓이며 능력이 길러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원인을 알고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같이 하자는 말이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모두는 세상이 돌아가는 메커니즘, 철학적 혹은 과학적 이치들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면 꾸준히 공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이게 자명하다면 이제 어떤 지식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잘 고민해 볼 차례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지식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깊은 사고를 위해 공부를 할 때 우리에게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지식의 종류에 따라 알맞은 외주화를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고로 어떤 지식을 어디에 쌓는 것이 옳을지 판단한다.
나는 지식을 세 가지로 분류해서 관리한다.
첫 번째, 기억할 지식 =>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두 번째, 기록할 지식 => 문서화와 쳬계화를 통해
세 번째, 검색할 지식 => 구글이나 ChatGPT에 질문을 통해
무언가를 깊이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본인의 지식 탐구 방식이 어느 정도 잡혀있을 것이다.
당신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발자라고 했을 때,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거나 프레임워크를 공부할 것이고 코드로 작성한 소프트웨어를 빌드하며 기능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디렉토리를 만들고 필수적인 코드를 작성하여 첫 빌드를 하고 버전 컨트롤 시스템에서 관리를 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수도 없이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중 당신이 처음 해보는 무언가가 있다면 먼저 해당 지식을 ChatGPT에게 물어보거나 구글에 검색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당신이 생각하기에 나중에 언젠가 또 쓰이게 될 유용한 지식이라고 판단되면 문서화를 하던 블로그를 적던 당신의 기억장치 어딘가에 기록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 매일 사용되는 지식(빌드 명령문, 배포 명령문, 기본 문법 등)은 자연스레 외워지게 될 것이다.
어떠한 태스크를 진행할 때, 당신이 초보자일수록 검색>기록>기억에 의존하여 작업을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실력이 늘어갈수록 기억>기록>검색순으로 점점 비중이 커지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사람은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자연스레 휘발되기 마련이다.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코드의 문법이나 명령문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암기를 한다면 당신의 작업 속도는 당연히 빨라진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무리하게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자 시도한다면 작업보다 암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으니 효율성을 잃어버린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검색한 모든 지식들을 무분별하게 문서화하여 기록한다면 원하는 정보를 체계화하는데 시간을 쓰게 되며 오히려 새로 검색을 하는 게 문서 탐색의 시간보다 더 효율적일 것이다.
결론: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까지 가는 동안 어떤 지식을 어떻게 다뤄야 최상의 효율성을 낼지 잘 따져보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암기하기 위해 노력하라.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규칙과 언어로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려고 노력하라. 그 외에 것들은 검색으로 해결하라.
(이는 한 번 보거나 해본 것들을 웬만하면 다 기억하는 암기 천재형에게는 해당되지 않겠다.)
앞으로 우리는 지식뿐만 아니라 연설하는 능력, 글을 읽는 능력, 검색을 하는 능력, 질문을 하는 능력을 두루 갖추어야 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할게 너무 많아 부담이 된다고? 하지만 덕분에 당신이 문제를 풀고 지식을 찾는 속도는 수천배 더 빨라지지 않았는가? 지식을 쌓는게 귀찮다고 불평하지말고 기꺼이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