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 한자어인 다정(多情)은 많은 정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정함은 가족, 친구, 동료 관계에서 상대에게 많은 정을 표현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친절하고 따듯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있으면 그것 만으로 다정한 것일까? 예를 들어 회사의 사장님이 자신의 직원들이 친절하다고는 말하지만 다정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정함은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쏟고, 정성을 들이는 마음이다. 단순한 감정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 이자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하고 움직이는 흔히 말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닮은 다정함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 사람의 개인이 다정이라는 마음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느끼는 다정함 또한 다양한 순간에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다정함은 상대를 이해하며 공감하고, 말과 행동으로 배려하는 습관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한두 번의 상냥한 말과 행동을 다정하다고 칭하지는 않는다. 다정함은 마음을 드러내는 말과 행동의 습관이고, 그 태도가 루틴이 되어 몸에 밴 성품이다. 꾸준한 단련의 결과인 것이다. 마음을 쓰는 일에도 습관이 필요하다. 꾸준한 운동이 몸의 근력을 유지시키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도 유지하려면 운동습관이 필요하다. 건강한 마음의 루틴을 가진 사람, 그래서 나는 다정한 사람이 좋다.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의 대사 중에 '똑똑함은 자신을 위해 쓰는 지능이고, 다정함은 타인을 위해 쓰는 지능이다.'라는 말이 있다. 똑똑한 사람은 상대방과의 대화 중에 말의 정확성에 집중해서,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면, 다정한 사람은 함께 하는 대화의 기쁨에 더욱 집중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똑똑한 사람은 올바른 지적을 할 줄 알지만 다정한 사람은 그 지적에 상처받은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안다. 즉 다정함 이란 ‘나에게 옳은 것'을 넘어서 ‘우리’에게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톨스토이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나에게 이 사랑이라 함은 다른 말로 다정함이라고 칭하고 싶다. 타인이 나에게 다정함을 베풀어주고 있음을 느낄 때면 마음속에서 온기가 번진다. 남편과 나는 연애와 결혼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오고 있다. 함께 해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연애 초기의 사랑과는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남편과 나는 이제 서로를 보살펴 준다는 느낌으로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존경과 존중의 마음이 생겨난다. 이렇듯 다정함은 가족 사이에서도 아주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 서로에게 다정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배려와 이해, 사랑의 가치를 배우게 되고 자신을 더욱 성숙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단단한 다정함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타고난 다정함으로 따듯한 마음을 나누어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다정함도 노력이고 배움의 영역이라 믿는다. 도서관에서 높은 서가가 닿지 않아 까치발을 들고 있는 아이에게 책을 꺼내어 슬며시 건네어주는 것, 지하철 계단에서 노인의 무거운 짐을 옮겨주는 것,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 있는 것, 다정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그런 다정함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 좋다. 타인이 말하는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상대의 표정을 읽어가며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고 필요한 공감을 하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는 다정함이 인류가 축적해 온 고도의 삶의 기예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다름에 대한 혐오와 갈등이 넘치는 이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다정함’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은 듯하다. 경쟁을 통한 생존만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우월한 집단만이 살아남는다는 통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하며 남들보다 우월한 조건을 점유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렇듯 세계 곳곳에서 차별과 갈등이 만연해 있지만 저자가 말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다정함은 때로는 말 한마디로도 따듯한 눈길로도 전해질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이지만 그 작은 다정함이 모였을 때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우리 사회도 인간의 다정함과 친화력을 통해 진화해 가는 희망의 가능성을 보고 싶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다정함이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다정이라는 단어에 이토록 매료되고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과 다정함이 주는 가치가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자신을 다정하게 돌보는 것이 곧 타인을 다정하게 대하는 것과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정한 이야기를 만드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살아가지만 그 이야기 속에 다정함이 담겨 있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따듯하고 풍요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다정히 있다는 걸 믿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다친 길고양이들을 보호소에 데려다주는 사소한 일처럼 작고 연약한 존재들에게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 속에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표정 속에 분명히 말이다. 앞으로 다가올 날에도 우리가 잠시나마 그런 다정한 순간을 나눠 가지길 바란다. 그런 기억의 온기로 다정한 삶을 함께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