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
난 우리 애들 대학 안 보낼 생각이야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이다. 아니 저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야?
소파에 비스듯하게 기대에 앉은 나의 자세와 목소리는 편안한데 그 내용이 좀 놀라웠던 모양이다.
친구들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너가 지금은 그런 생각일지 몰라도 너도 애들을 한국에서 키워봐. 그게 어디 가능한 말인가. 주변에서 다들 지 애 대학 보낼라고 쌍지팡이 들고 달려드는데, 다른 애들은 다 학원에 가는데, 니 애들만 대학을 안 가겠다고?>

흠.... 대학을 나와본 나로서는,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아닌 창업을 했던 나로서는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그다지 쓸모 있는 것인 줄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학 전공과 상관없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고,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 청년 실업자 수가 요새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는데... 게다가 요즘 기업들도 학력보다는 경력을 요구한다던데...
젊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한국은 정말 작은 나라예요. 해외에 나가보면 할 수 있는 일도 정말 많고, 한국에서보다 많고 큰 기회들이 널려 있어요.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도 사실 과장된 측면이 많아요. 막상 부딪혀서 살다 보면 필요한 말들 위주로 조금씩 익히게 될 거고 그럼 생각보다 금방 늘어요."
대학을 가려는 이유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의 범위를 넓히는 데에 있다면 한국만 벗어나도 상당 부분 이룰 수 있다. 교양과 식견을 넓힌다, 인맥을 쌓는다, 전문성을 기른다, 공신력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진출이 가능하다 등 대학을 가려는 사유들을 구구절절 열거할 수 있지만 핵심만 간추리자면 <먹고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자 함에 있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라붙게 되는 소위 'K-프리미엄"이 존재한다. K-pop, K-Drama, K-코스메틱, 한국어 등 우리에겐 숨 쉬듯 익숙한 것들을 동경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한국기업과 한국인의 성향을 신뢰하는 수가 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한국에서 고생고생하며 아파트 한 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일보다 더 가치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도 있다. 어려움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언어 장벽, 인종 차별, 비자 문제 등 현실적인 벽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기회라는 측면에서 한국이 좁은 양식장이라면 해외는 드넓은 태평양 같은 곳이라는 말이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하는 노력은 가상하다마는 굳이 좁은 한반도에서 아등바등 대학까지 나와서 서로를 비교하며 우위를 따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간 아끼고 돈 아껴서 해외로 진출하는 게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럼 대학 대신 뭘 준비해야 하나?
한국이든 해외든 우리 자녀들이 대학 대신 뭘 준비해야 하는지 아주 명확하다.
책을 고를 줄 아는 능력
결국 대학에서 교수님들이 하는 수업이란 게 양서를 종합하여 본인의 커리큘럼 안에서 본인의 말로 풀어서 설명해 준 다음, 학생들에게 관련 도서들을 읽게 하고 그를 토대로 학생들 자신의 언어로 다시 풀어내는 리포트를 제출토록 하는 것이 전부다. 간단히 말하자면 '책'이다. 한 가지 전문분야에 대해 4년 동안 차근차근 그리고 어떤 측면에선 강제력을 동원하여 진행하다 보니 어느 정도의 소양이 쌓이는 것은 팩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배워야 할 혹은 배우고 싶은 분야가 생기기만 하면 학습 효율성이 몇 배로 증가하여 4년이 아닌 1년 만에라도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좋은 책 한 권을 잘 찾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수 천만 원의 비용과 수년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 ----> AI 활용 능력
나는 틈만 나면 자녀들과 도서관에 간다. 어린 자녀는 만화로 된 과학 상식, 천자문,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읽히고, 조금 더 큰 자녀일수록 글밥이 많은 책을 권해준다. 세계의 명작들과 소설을 많이 읽도록 권하고 있다. 그리고 집에서는 어린이 신문을 쥐어주면서 하루에 좋은 문장 3~5개를 원고지에 옮겨 적게 하고, 그 문장을 선택한 이유까지 적도록 한다.
AI 시대에는 논리력이 중요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는 AI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소양이 된다. AI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프롬프트 작성이 핵심이고 여기서 전문성이 갈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AI가 무언가 내놓았을 때 그것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 레벨에 따라 결과물의 등급도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책을 통한 전문성 습득, 실습을 통한 현장 경력, 그 과정에서 필요한 AI활용 능력 등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 표현 능력이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능력
AI가 멋진 결과물을 내놓아도 그것을 AI가 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이 가지는 저항감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미술 영역에서 모든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한 작품이 높은 가격에 판매되려는 순간에 그 작품이 AI가 자동으로 그려낸 그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구매자의 마음은 어떨까. 혹은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전문의와 화상통화로 상담을 진행했는데 그게 진짜 사람이 아닌 AI 전문의였다면 환자는 어떤 느낌일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AI의 탄생을 지켜본 우리 세대 사람들에게는 정서적 거리감 혹은 심리적 저항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자녀 세대까지는 공감 능력, 독창성, 창의성, 유일성, 윤리성 등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함과 동시에 그냥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해질 것이다.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자녀들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 200년 더 지난다면 인간과 로봇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어질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자녀이므로 거기까지만 생각하련다.
모든 사람이 20살 이전에 인생의 방향을 찾는 것은 아니기에 어쩌면 대학이라는 과정이 그러한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옵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위 글을 읽으면서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아빠로서 나는 내 딸들에게는 대학이라는 고정된 옵션이 아닌 더욱 다양하고 열린 선택을 주고 싶다는 게 내 결론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을 가냐 마냐는 중요하지 않다. AI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하는가도 (중요하지만) 1순위는 아니다.
내 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미래를 염려함으로 함께 준비하려는 자세가 난 더 가치롭다고 생각되어 이 밤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다.
방금 내 딸내미가 와서 이 글을 읽고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데도 남들이 가니까 그냥 대학을 가는 건 정말 불쌍한 일이에요. 한국에서는 정말 그렇게 대학을 가기도 하나요?"라고 한다.
그 아빠에 그 딸인가? 아님, 세뇌에 성공한 것인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그 생각이 모두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