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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수다방

낭만스런 낭비

인류가 발전을 하는 이유

by 조운생각

인류에게 아니, 정확히는 여성에게 최고의 발명품으로 세탁기가 꼽힌다. 세탁기 이전에는 어떠했는가? 식구들이 간편하게 벗어던진 옷더미를 매일 같이 손으로 비비고 방망이로 때리며 빨래를 하느라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다. 물론 설거지, 요리, 집안 청소 등 여성들에게 할당되었던 많은 집안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손빨래는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던 과업이었다. 그래서 세탁기의 발명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성평등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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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이나 마나 우리 집 사람들은 아무도 청소에 관심이 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살림 자동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해외생활을 마치고 지난겨울 한국에 오자마자 나는 당근앱을 다운로드하여 로봇청소기를 중고로 하나 구입했다. 저렴하게 구매한 요 녀석이 얼마나 맘에 들던지, 나는 집안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쓸고 닦는 그것을 졸졸 따라다니며 지켜봤다. 연이어 음식물 처리기,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을 구매했다. 잠자는 사람의 숨소리마냥 전자기기들은 살아있다는 증거로 작은 모터 소리를 내었다.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기계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고맙다. 날이 갈수록 더 똑똑해지는 전자제품들 덕에 내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시간도 아끼게 된다. 그런데 내 생활을 가만 보면 절약하여 얻게 된 시간과 에너지를 잘 사용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빨래는 세탁기가 다해줬는데 그걸 개어놓는 게 귀찮아 소파 위에 이틀 동안 널브러져 있다. 하여 옷을 옷장에서 찾지 않고 소파를 뒤진다. 식기세척기도 같은 처지다.
전자레인지가 식사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 스트레칭이라도 하자면서 유튜브를 튼다. 내친김에 시간관리 특급 노하우 영상도 본다. 시간관리 영상과 더불어 머리 좀 식히기 위해 웃참 챌린지도 몇 개 본다. 전자레인지에서 ‘띵’ 소리가 나면 핸드폰을 든 채로 전자레인지 문을 열러 간다.
전동칫솔질을 하면서 머리 감겨주는 기계는 왜 빨리 출시가 안 되는 건지 한심해죽겠다. 다들 뭐 하는 거야, 빨리 개발 안 하고.
티비 채널 돌리러 리모컨을 찾다가 발아래 저만치서 발견하고는 발가락을 집게 모양을 만들고는 그걸 들어 올릴라고 부들거린다.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나. 애플워치가 운동하라고 알려주는데 모른척하고 누워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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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에 기계들은 점점 사람이 되어가는데 나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얻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나는 챗지피티를 열어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게 좋을는지를 묻는다.

“인간답게 살려면 어떡해야 해?”


기계에게 모든 잡일은 맡겨 버리고 나는 고상하게 앉아서 온라인 고스톱을 즐기면 딱이다. 넷플릭스로 로코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 웹소설도 읽는다. 그러다가 시간 나면 글도 좀 써보고 ㅎㅎ

기계들 덕에 낭만스런 낭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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