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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수다방

이건 또 뭔 소리야

잃어버린 소리

by 조운생각

2011년. 당시는 시리아에 내전이 터져 전 세계의 기자들이 생생한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기삿거리가 넘쳐나는 현장으로 달려가던 시기이다. 그와 반대로 시리아 거주민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난민’이란 이름표를 달고 주변국으로 도망쳐 나오기 바빴다. 인류의 평행이동이랄까. 누구는 소란을 피해 다니고, 누구는 그것을 찾는다.


그 시기에 난 모로코에 살고 있었고, 살기 위해 매일 전투적으로 아랍어를 배우고 있었다. 내 삶도 전쟁이었다. 지렁이 같은 좌향식 문자를 난생처음 배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책도 없이 법인부터 세워놓고 일을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고객 응대와 직원 관리 등 업무 스트레스를 베이스로 깔아 두었다. 이놈의 아랍어. 낯선 단어들은 동양인의 머릿속을 한 번 들여다본 뒤 발 뻗을 곳이 없어 보인다는 듯 다 뒤돌아 나가버렸다.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아랍어를 붙들고 일 년 정도 앓았다. 그래도 내 굳은 마음을 뒤늦게나마 알아주었는지 조금씩 나를 받아들여 주더라.


어느 날 모로코에 살고 싶다고 방문한 한국 사람을 차 조수석에 태우고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던 때였다. 시내에서 신호에 걸려 잠시 정차하고 있는데 조수석 창문 밖으로 히잡을 둘러 쓴 여성이 다가왔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고 있는데 겨우 돌이나 되었을까. 그녀는 닫힌 창문 너머로 자신의 여권을 들이밀며 소심하게 말했다.


“아나 믠 소리야”


옆에 있던 한국분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게 뭔 소리야? 뭐라는 거야?”


그동안 배운 아랍어로 설명을 해드렸다.


아나 = 나는

믠 = ~로부터

소리야 = 수리아 = 시리아


즉, 나는 시리아 난민이라는 말입니다.


살려 달란 소리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아기를 낳았으나 본국에 내전이 터져 다 죽을 것 같아서 살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젠 먹을 것이 없어 죽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머물 수 있는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살고 있으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한국분은 “내 생존도 위태롭다며 주변의 아픔에 대해 무심해진 나를 돌이켜보게 되었노라”고 하셨다. 뉴스에서만 볼 수 있던 소란과 그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보니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세상의 전쟁 소리가 끊이지 않자 그것에 익숙해진 내 귀 역시 언제부터인지 음소거 기능을 작동시켜 왔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누구는 안 힘드냐고. 어쩌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라고. 약자들의 소리를 꺼버릴 수 없을 땐 그렇게 내 볼륨을 높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한국 길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도 없고, 나라가 좋아져서 복지도 훌륭하니 그런 듣기에도 흉한 소리는 하지 않는 게 맞아. 내 인생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 남한테 피해 안 주면 그게 최선이라고!


귀가 닫혀, 아니 귀를 닫아 소리를 이미 차단시켜버린 채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기 싫어하는 나는 시리아 난민의 촉촉한 눈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 안경을 고쳐 쓰고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어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한다. 다들 피해 다니는 그 소리, 세상이 좋아져서 이미 사라졌다고들 믿는 그 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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