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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Jun 07. 2023

자연스럽다

AI가 모든 걸 해 줄 수 있을까?

예전에 IT 일을 했었다.

그리고 웃기게도 요즘 뜨는 뉴런형 AI라는 원시초창기 모델로 논문을 썼던 적이 있다.

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의 오래전 이야기지만 한 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갖 귀국한 교수한테 처음 뉴런형 AI 알고리즘을 배우면서 신세계라는 생각을 했었다. 멋지게 수학과 출신의 장점을 살려 논문을 쓰겠다고 도전했지만 나의 한계를 느끼고 겨우 겨우 턱걸이로 졸업한 아픈 기억을 주는 단어로 지금은 남아있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유행이 돌고 돌듯이 잠시 주춤했던 뉴런형 학습 AI가 요즘 대세의 뉴스거리다.

식탁에 앉으면 성인이 된 아이들과 아직도 개발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은 ChatGPT의  진화에 대해 쉼표 없이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처음 Chat GPT의 등장은 참 신기하다였는데 한주 한주 지나고 나서 왠지 내가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갑자기 이렇게 열심히 뭘 창작한들 이게 무슨 소용이지?

이런 생각이 드나 보다.

 전문적인 직종일수록 없어질? 아니면 AI에 밀릴 가능성이 높다.

달달 외우거나 많은 데이터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사람보다 AI가 날 것임은 나도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요즘 수학문제를 사진 찍어 검색하면 풀이과정을 보여주는 앱은 아주 손쉽게 볼 수 있다.

AI 가 점점 맞춤형으로 교육시장에서 큰 역할도 할 것이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이다.

AI가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 거기에 맞춰 상활별로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을까?


요즘 나이 든 우리 집 개들을 위해 거의 매일 강가를 산책한다.

우리 집에서 강가까지는 차로 이동해야 한다.

굳이 동네를 놔두고 강가로 산책하는 이유는 한적한 곳에서 개들을 풀어주기 좋아서 이기도 하고 나이 든 개 중 한 마리가 차 타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나도 이 시간과 공간이 즐거워서이기도 하다.


그전에는 집에 개가 여러 마리라 차에 태우고 다닐 수가 없었는데 한 마리 두 마리 나이가 들어 길을 떠났다. 그러다 보니 남은 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어리석게도 천년만년 같이 살 것처럼 살림살이를 하나 둘 장만하다 보니 개 살림살이가 꽤 된다. 그런데 아직도 언젠가 쓸까 싶어 남겨 뒀지만 한 번도 안 쓴 채 3년 4년 된 개 줄이며 개 옷들이 여러 개다.

옷들을 추억 때문에 버리지도 못하고 낡아서 누굴 주지도 못하는 마음에 두 마리 남은 나이 든 개들의 짐이라는 핑계로 아직도 한쪽에 지저분하게 차지하고 있다.


문득 함께 늙어간 개들이 떠나고 나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시간 중에 하루 한 순간이라도 우리 가족에게 충성서약을 한 노견들이 좋아하는 산책을 하기로 우리 가족은 무언의 약속이 되어있어 감기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저녁 늦게라도 산책을 간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서 간혹 서둘러 저녁을 먹고 강가에 가면 환상적인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개들이야 이 풍경을 보고 멋지다 생각할까? 의문이 들지만 내가 스트레스 풀리는 냄새를 맡고 흐뭇해할 것 같다고 마음대로 해석한다.

흘러가는 강물과 어울려 울렁이는 산 그림자와 연 하늘색이 옥색과 주황색으로 물들며 노을까지 지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앞은 잘 보이는 노견과 차 타는 거 좋아하는 이제 노견으로 접어든 키 큰 나의 반려견은 가만히 내 옆에서 흘러가는 강물과 집 찾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AI가 글도 쓰고 사진도 만들고 개발도 하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답도 해주는 세상에서 이런 풍경을 보며 함께 늙어감을 위로해 주고 가는 그날까지 쓰임새 있게 살자는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해주는 그 무엇의 존재를 대신해 줄 수 있을까?


20여 년 전 애들을 자연에서 뛰놀게 하자는 핑계로 내려왔지만 그때부터 쭈욱 매일 새로운 자연을 본다.

하루가 고단하고 피곤하다가도 해질 때 바라보는 풍경은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일깨워 준다.

매일 봐도 부족한 모습.

분명 눈에 담겼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음으로 이 상황과 풍경을 내 안에 받아들이게 된다.

어제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태어났으니 사라지는 당연한 존재의 입장에서 영원히 남을 AI의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은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뀐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면 우리 애들은 내게

" 그러니까 결혼도 하지 말고 애도 낳지 말아야 해.

   인류는 멸망할 거야. "


이 말이 이제는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자연스러움이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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