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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Aug 19. 2021

이야기들어주고 수학공부는 덤

오늘도 아이들은

내가 수학 개인교습소를 차리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수학과를 졸업하긴 했으나 수학과에 입학하고 1학기가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수학과에서 공부할 만큼 뛰어난 두뇌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4년 동안 버티기로 대학생활을 보낸 기억은 있다. 물론 재미를 찾으려 무척 노력했고 그 결과 대학원은 다른 과로 가서 취업에 성공하면서 나의 수학과 출신 타이틀을 벗어 내려는 목표를 달성했었다.

그런데 돌아와 수학학원 선생이라니...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 수학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나 잘 공감이 된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수학 잘하는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가서 깨달은 것은 내가 원리를 알고 수학 공부를 해나간 것이 아니었구나. 그냥 요령껏 문제 잘 풀던 아이였었던 것이다. 그렇게 규칙에 적용해서 문제 푸는 것이 좀 빠른 아이 그리고 외우는 것보다는 훨씬 속 편한 과목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성실이라는 양념이 하나 얹어져서 꽤나 성실하지도 않고 꽤나 똑똑하지도 않지만 그럭저럭 타 과목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니 수학 잘하는 아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내 학창 시절의 수학 공부 기억을 더듬으며 요즘 아이 들과 비교해보면 내 아이들 키울 때 상황 다르고 요즘 아이들 상황 또한 많이 바뀌었다.

진화도 아니고 퇴화도 아닌 애매한 우리나라의 수학교육방향은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오늘은 내가 학원강사로 있다가 개인교습소를 차리며 받게 된 한 중학생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개인사는 접어두고

이 학생에게는 특이사항이 있다.

살살 달래면 머리가 잘 돌아가고 못한다고 이해 좀 하려고 노력하라고 다그치는 소리를 하면 전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덧셈 뺄셈도 힘들어한다.

그런데 말은 많다.

처음엔 잘 들어줬다. 주로 개인 이야기.

그리고 공부를 시작하면 꽤 잘 이해하고 한번 이해한 개념은 많은 문제를 풀 에너지는 못 내지만 그 개념을 적용한 문제들은 거의 실수 없이 다 맞힌다.

단순한 개념 하나 이해시켜놓으면 좀 어렵게 느껴질 법한 문제까지 잘 맞힌다. 그런데 시간은 오래 걸리고 그날 공부에 쏟아부을 에너지를 다 쓴 느낌으로 학원을 나간다.

바로 나가지 못하고 공부가 끝난 후에도 집안 이야기며 친구 이야기며 자신의 관심사를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매번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 받을 시간도 되었고 또 학생들이 좀 늘어서 개인적인 이야기 들어줄 시간이 줄어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좀 냉정하게 개념 알려주고 빨리 푸는 연습을 하자고 하니 좋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안 들어줬다. 건성으로 '응 그래 그래...' 하고 이제 문제 풀어라 하고 나니...

얘가 머리를 뜯기 시작한다.

개념이 어려워 그러려니 했는데... 그것도 있겠지만 잘 풀던 부분인데 머리가 안 돌아간단다. 사실 얘만 그런 건 아니다. 이련 부류의 아이들이 있다.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좀 있는 아이. 게다가 이제 사춘기를 겪으며 요동치는 자신을 제어하기 힘든 아이들.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자기들의 힘듦을 들어줄 어른이 필요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대상이 부모면 좋은데 부모들은 조급하다.

우리 아이들이 행여 나태해질까? 뒤처질까? 초점이 거기에 맞춰 있다 보니 아이들이 '힘들어요' '하기 싫어요'라는 말이 '공부 안 할래요' '엄마 말 안 들을래요'로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도 불안한데 부모가 함께 불안해하니 아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둘 데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오늘은 잘해서 일찍 끝내주고 싶은데 '왜 벌써 왔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부모님.

이 믿음은 1년이 넘어야 쌓인다. 거기에 아이가 100점이라는 보증수표를 받아줘야 부모님은 내가 사용하는 밀당의 방법을 수용해 준다.


오늘 카톡이 왔다.

'저 학원 가기 싫어요'

'어떻게 할까? 네가 선택해'

'내일 갈게요'

'그럼 내일 숙제 꼭 해와서 모르는 것 질문해'

'네'


이 학생 부모님은 내게 권한을 주셨다.

여기까지 오기에 시간이 걸렸지만 자주 아이와 다투면서 어머니께서 이렇게 계속 가서는 안 되겠다 하시며 내게 아이와 수업시간이나 방법을 일임해 주셨다.


어느 부모에게나 특별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수학 공부가 힘든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리고 중요한 친구 문제... 게다가 어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힘들게 한다.

집에 오면 부모님과의 갈등도 한 몫하고...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푸념을 하고 수학 공부는 덤으로 받아간다.


한 학생이 내게 한 말

'저 이번에도 100점 맞아야 해요'

'왜?'

'그래야 빡센 수학학원으로 엄마가 안 보낼 거예요'

'그래 열심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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