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적 육아일기
사람들이 줄곧 삶의 상황들을 바꾸려고만 애쓰지, 이런 상황들을 만들어낸 믿음을 바꾸려고 애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빈곤과 굶주림을 불러오는 상황, 비참과 억압과 편견을 불러오는 상황, 기회의 불평등과 폭력과 전쟁을 불러오는 상황 따위를 없애려고 애쓴다. 그리하여 그들은 종교적 설득과 법령과 칙령과 선의의 독재와 전제 정부와 대중 봉기를 시도해본다.
그들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런 상황들을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건, 이런 상황들은 믿음을 반영하는데, 그 믿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너는 세상의 믿음을 바꾸기 위해 일해야 한다. 언제나 잊지 마라, 믿음은 행동방식을 만들어내고 행동방식은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걸.
닐 도날드 월쉬, [신과 나눈 이야기]
2014년 이후 내 삶은 달라졌다. 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내 동생부터 사촌 동생들까지 돌봄의 귀재였다. 따라서 막연히 내 아이를 낳아서도 수월하게 잘 기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2014년 5월, 출산의 무용담을 안고 당당히 귀환한 내게 땀에 절은 수유복과 당직 생활 때보다 2-3시간 온잠도 자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다. 그날 이후 아이들에게 '늦잠'이라는 것 또한 빼앗겼다고 꽤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얻을 마음조차 없었던 '신선한 아침'을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기도 전에 이미 선물 받은 것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가 새로 태어나야 하는 과정이다.
7년이 흘렀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아이에게 어떤 좋은 습관이나 행동을 심어주기 가장 쉬운 방법은 부모가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 하고 닮아가며 성장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래서 30년 이상 갈고닦아 온 내 버릇, 개나 줘야 했다. 나쁜 말투, 나쁜 생각, 부정적 사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내면의 상처, 잘못된 관념까지 모두 버려야 했다. 내가 경험했던 불행으로 내가 소화시키지 못한 감정을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에게 언제까지 던질 것인가?
부모로서 받는 가장 큰 축복은 하마터면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갈 수도 있었던 내 '경계', '그릇'을 인지하고 넓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력을 아이 '덕분에'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으며, 매 순간 좌절하고 또 일어서는 것이다. 가느다랗고 편안한 그러나 때로는 깊은 우울을 피할 수 없는 삶을 살 것인가, 희로애락의 풍성한 맛을 느끼며 아이라는 강력한 동기로 매일 발전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나,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쨌든 용기를 내보라 하고 싶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삶과 내가 참 좋다. 아름다운 생각, 습관, 행동, 말버릇, 세 살 버릇 고치는 혁신을 매일 시도하며 점을 찍고 선을 그린다.
한마디 한마디 꾹꾹 눌러 천천히 아이에게 사랑스러운 말을 전할 때, 부정적 감정을 심호흡과 함께 날숨에 녹여 흩어 보내고 아이를 한번 더 꼭 안아줄 때, 다 자라지 못한 내 안의 아이를 토닥이며 습관이 아닌 내 생각과 의지로 선택하여 붙잡는 찰나의 순간, 나 자신이 더 나아짐을,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결코 완벽하다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괜찮다 만족하며 내 존재 자체로 완전함을 느낀다.
나는 언제나 시간, 공부, 일, 모든 것에서 효율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적당한 목표를 정하고 이룰 만큼 행동하였고 목표까지 돌아가는 것은 지독히 싫어했다. 심지어 '인생'이라는 것에 시행착오를 덜 겪고 싶은 마음에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들' 같은 부류의 책들도 탐독하였는데, 죽음을 앞에 두고 가장 아쉬운 것이 과연 무엇일까 너무나 궁금했다. 공통적 가치들은 '나' 자신의 행복, 사랑, 그리고 가족과의 시간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 ― 그러니까 영화 '어바웃 타임' 초반, 주인공 가족들이 매일 집 앞 해변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날씨가 어떻든 뒷마당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일정한 의식 같은 그런 것들 말이다 ― 과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가치들. 그 중심을 잃지 않으며 그러나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은 이 소중한 시간을 편안하게 확장시키기 위함이다.
스스로를 완전히 믿지 못했던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경험을 쌓으며 나를 향한 '믿음'의 크기를 키우는 만큼, 아이를 향한 믿음도 자란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보다는 어디까지 얼마나 아이를 믿을 수 있는가 '나'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