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 불꽃을 틔우다

아이들을 위한 시크릿

by K Y Shin




새하얀 솜사탕 같은 눈이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다 차츰 잦아든 밤이었다. 몇 해를 물려 입은 옷인지 끝단이 다 해지고 올이 풀린 원피스만 입은 채 흔한 겨울 모자나 목도리 하나 두르지 않은 소녀가 길을 걷고 있었다. 소녀의 하얀 뺨은 차갑게 얼어붙은 대리석 같았지만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보였다.


‘어떻게든 하나는 팔 수 있을 거야, 이번에는 저 쪽으로 가보자.’


걸을 때마다 조그마한 발 뒤꿈치가 들리는 헐렁한 신발을 신고도 소녀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리며 몸에 닿을 듯 말 듯 쏜살같이 지나는 마차에 소녀는 급히 멈춰 섰고, 그 바람에 벗겨진 신발 한 짝은 온데간데 찾을 수 없었다. 발까지 얼기 시작한 소녀는 앞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팔려고 가지고 온 소중한 성냥갑들이 잘 있는지 확인부터 하였다. 성냥갑 하나를 꺼내어 높이 들어 올렸지만 한파 속에 한시라도 바삐 집으로 돌아가려는 행인들 중 어느 누구도 작은 소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성냥갑 하나 팔지 못하고 집에 돌아간다면! 소녀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분명 1센트도 벌어오지 못한 대가로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내쫓길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소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소녀에게는 꿈이 있었다. 갈라진 지붕, 춥고 늘 술에 취한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들리는 집이 아니라 부엌에서 거위를 굽는 근사한 냄새가 퍼져나가는 따뜻한 집.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한 짝만 남은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벗겨지고 색이 바랬지만 도톰하고 보드라운 보랏빛 신발.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소녀는 길모퉁이 두 집이 서로 맞댄 담벼락 사이, 바람이 들지 않는 움푹 들어간 곳을 발견하고는 신발 한 짝에 두 발 끝을 걸친 채 웅크리고 앉았다. 손이 꽁꽁 얼어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지만 가까스로 성냥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치지직 타오른 불꽃이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었다. 그러나 성냥 한 개비의 불꽃은 금세 꺼졌고 성냥갑 하나를 다 쓰는 동안에도 몸은 점점 더 차갑게 굳어갔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가듯 이제는 어떠한 희망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낀 그때, 어디선가 희미하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아가, 많이 춥지? 일단 어떻게든 움직여 보겠니? 네 안에는 힘이 있단다.’


그 순간, 소녀의 마음속에 불현듯 불길이 일었다. 소녀는 꽁꽁 언 발을 땅에 겨우 딛고 벽을 잡고 일어섰다. 몸을 겨우 바르게 펴고 선 소녀는 이윽고 보랏빛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소녀의 차분하고 고요한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 속으로 퍼져나갔다. 소녀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몸이 따뜻해지고 뱃속에서 간질간질 기분 좋은 느낌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점차 커지는 소녀의 목소리는 삭막한 밤거리를 가득 채웠고 활활 타오르는 난로 마냥 소녀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추위에 손을 비비면서도 소녀의 계속되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소녀의 마음속에 살아난 불씨는 고운 소리가 되어 곁을 지나던 지친 사람들의 몸과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소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아는 한 끝까지 이어 부르면서 작년, 유리문 안으로 보았던 부잣집 거실의 크고 아름다운 트리와 그 아래 가득한 선물 꾸러미들을 눈앞에 떠올렸다. 장작 더미가 뜨겁게 타오르는 벽난로 옆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크고 빛나는 미소도 기억해냈다.

바로 그때였다. 담벼락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와 소녀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앞치마 위로 두 손을 얌전히 포개어 서서 소녀가 노래를 마치기를 기다리던 그 사람은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가 손을 마주 잡았다.


“마틸다 아주머니!”


누구보다 소녀를 아끼고 사랑하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종종 소녀에게 먹을거리며 이것저것 챙겨주셨던 옆집의 마음씨 좋은 마틸다 아주머니가 그 자리에 서계셨다. 마틸다 아주머니마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 떠나고 의지할 곳 없었던 소녀의 붉은 뺨을 타고 반가움의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아주머니는 한동안 소녀를 꼭 껴안고 있었다. 이제 소녀의 몸은 완전히 따뜻해졌고, 뺨은 탐스러운 사과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아주머니가 계시는 이 댁 주인 어르신이 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고운 노랫소리에 큰 위로를 받아 목소리의 주인공과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소녀는 몸을 돌려 노랗고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빼꼼히 열린 크고 아름다운 창문 사이로 거위를 굽는 근사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성냥팔이 소녀' 원작에서 소녀가 성냥 한 개비씩 불을 붙이며 꿈꿔온 순간을 보는 장면은 슬프고도 아름다웠지만, 귀한 생명이 그렇게 스러져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할머니를 만나는 것도 꽤 괜찮은 것이지만요. 저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 정신을 차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생각합니다. 당장 눈앞이 깜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하나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다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여 진정 내가 원하는 상태를 결정하고 생생하게 떠올려봅니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을 즉시 행동으로 옮겨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보면 삶이 달라지고 어느새 꿈꾸었던 곳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녀도 그것이 누구의 마음에 어떻게 닿을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마음에 떠오른 소리를 따라갔을 뿐입니다.

이렇게 내 안의 거대한 힘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기적이 따른다고 믿습니다. 기적은 기적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도 세상에는 기적이 없다고 믿고 살거나,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두 가지 삶의 방법 중에 후자를 택하겠다고 했지요. 현재의 기적을 믿는 저는 이야기의 곳곳에 희망이나 용기, 미소 같은 아름다운 것들을 조금씩 발라두고 그것을 여러 가지 감각으로 꺼내어보고자 하였습니다. 그 끈을 이어 붙여 꿈을 계속 간직하고 순간의 결단과 행동으로 어둠 속에서 다시 일어선 소녀에게 결국 꿈이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오는 순간을 그려보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어떤 것이든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더 큰 선물이 돌아온다는 것도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어떤 작은 찌릿함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