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래서 결국 그녀의 본모습을 알게 해주는 사람에게 신뢰가 생겼다. 그런 이와 함께하는 대화는 "내가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했던가, 룸메이트에게 했던가?"하고 머뭇거리는 말보다는 "지난주에 당신이 했던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와 같은 말로 채워질 터였다.
그런 사람들은 그녀의 세세한 부분을 기억했고, "어릴 때 어머니와 스트라스부르에 갔다고 했죠. 그때……", 더 사소하게는 "차에 설탕을 두 숟가락 넣지요, 그렇지요?"
따라서 그녀는 그들의 의식 속 갈피갈피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특정한 단어를 발음하는 습관이나 포크를 쓰는 독특한 습관, 좋아하는 책이나 레스토랑에 대한 취향을 어떤 남자가 기억한다고 하자. 그것은 값비싼 장미나 강렬한 고백보다 더 그 뜻을 잘 전달했고, 그녀는 이 사람이 자신을 아낀다는 걸 신뢰할 수 있었다.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 귀걸이는 정말 잘 어울려요. 지난 화요일에도 그걸 달았죠?"라고 말하는 사람을 그녀가 더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겸손 때문이 아니었다.
"당신이 오렌지를 까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라고 에릭이 말하자, 그녀는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져서 웃음 지었다. '내가' 관련된 일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중에서 '그녀가 오렌지를 까는 모습'을 집어내다니 한층 가까운 느낌이 들었고, 그럴듯하긴 해도 구체적인 것이 없는 미사여구보다 훨씬 더 마음을 울렸다.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향하는 열정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잘 아는 것이기에 끝없이 물음을 던져본다. 내 '본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언제나 꿈이 많은 아이였다. 때로는 몽상가 쪽에 가까웠다. 책 속으로 빠져드는 시간을 좋아했는데, 집에는 그다지 읽을거리가 없었다. 부모님이 결혼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책들과 탁한 초록색의 두꺼운 표지 속 영어 테이프 같은 구시대 유물 몇 개만이 책장을 메우고 있을 뿐, 어머니는 전집을 사다 나르는 부류는 아니었다. 유치원 시절 어머니가 사주신 백과사전 두께의 퀴리부인 만화 위인전이 한 권 있었는데, 얼마나 마르고 닳도록 봤는지 응당 과학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며 과학자로서(만 가능하다 생각했던) 뜻깊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다양성이 결여된 위인의 소개가 얼마나 위험천만할 수 있는지 지금에 와서야 깨닫는다. 무한한 가능성의 어린이에게 얼마나 결정적 의미로 다가왔던지. 다행히 지구과학 II를 배우다 나는 이 길이 아님을 빨리 깨달았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는 주변에서 동화 전집 같은 것을 종종 빌려다 주셨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은 책상 옆에 명작동화전집을 쌓아두고는 빨리 갖다 줘야 한다고 닦달하기에 등교 전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에 빠졌던 첫 경험이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와 종종 같이 갔던 추리문학관도 정말 좋아했다. 유일하게 운전할 때만 서두르지 않는 아버지의 느릿한 차를 타고 꽤나 멀리 가야 했던, 언덕을 오르면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뻔한 자리였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드러운 차 향기와 투박하지만 정갈하게 줄지어 선 짙은 고동색의 원목 탁자와 마룻바닥, 바랜듯한 줄무늬 천으로 싸인 푹신한 소파,그리고 벽을 따라 늘어선 책장을 가득 메운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책들이 늘 제자리를 지키는 친구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편안하고도 칙칙한, 때로는 웅장한 묘한 기운에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후 당시에도 언제 출판된 책인가 싶을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매 작품이 거의 원작에 가까운 분량의 세계문학전집을 얻어 주셨는데, 5학년 때쯤이던가 하필 스탕달의 '적과 흑'을 빼들었다. 뭔 소린지 모를 얘기를 끝없이 읽어나가면서 인내심과 끈기를 키웠던 듯하다. 엎어두었다 다시 읽기를 수개월을 반복하여 겨우 다 읽긴 하였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난다. 좌우지간 나는 어떤 책이든 읽을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묘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책을 먹어 치워 가던 나는 안방 서랍장 위에 나동그라져 있던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그마저 재미있었던 기억이다. 40대 중반의 울 엄마는 이런 책을 읽었구나. 결혼하고 나를 낳으며 일을 관두고 한 번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늘 나와 함께 하며 즐거워 보였던 엄마지만, 이를 내가 인지하고부터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엄마의 꿈은 내가 되어갔겠지. 언젠가는 떠나갈 수밖에 없는 꿈. 이제는 내가 그즈음에 서 있다. 첫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일'이라는 것에 대해 끝없는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언제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엄마이기를 바랄 뿐이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엄마처럼. 그렇게 '일'에서 시작된 고민은 '꿈'에 대한 것으로 번져갔다. 내 꿈은 무엇이었나?
학창 시절, 내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책은 지금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승연 작가의 '보너스 점수와 댄스파티'였다. 생생한 유학기를 보자니 틀에 박힌 우리나라 학생의 삶은 너무 따분한 것이었다. 중학생의 눈으로 보아도 우리나라 교육 체계만 착실히 따라가다가는 글로벌하고 창조적인 멋~진 삶은 영영 멀어질 것만 같았다. 굉장한 용기를 내어 유학을 보내달라 요청했지만 집안 형편 상 단칼에 거절. 작가 본인도 '유학 초짜 시절 미국 사회를 있는 그대로보다는 순진한 한국 학생의 눈으로만 본 내용이었다'라고 전하니 나 또한 유학에 대한 로망만 가졌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20세기 여인들'. 금빛 표지가 빛나던, 20세기 여성 55인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내게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야심 또한 심어주었다. 뭐라도 되자. 정치, 페미니즘, 문학, 영화, 예술, 스포츠 등 정말 다양한 분야를 이끄는 여성들에게 감탄하며, 환경 보호에 관한 아니타 로딕의 철학이 얼마나 인상 깊었던지 꽤 오랫동안 환경공학자의 꿈을 키우기도 하였다.
그렇게 다양한 꿈을 품고 자란 나는, 본업이 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여전하다. 시시때때로 멈추어 서서 내가 삶에서 진정 사랑하는 것들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나는 언제나 책을 사랑했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때면 가슴이 뛰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또는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갈지라도 마음에 고이 품은 설렘의 조각들이 있을 테다. 나의 그것을 확신한 지금, 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