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내 친구 수전은 스케이트를 타지 않았다. 어차피 최고가 될 수 없는데 뭐 하러 탄담? 그러다 그녀는 마흔 살이 되었다. 그녀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자신의 하루하루가 빛이 바래고 둔중하다고 느꼈다. 나이 앞자리 숫자를 바꿔 놓는 의미심장한 생일들을 맞이할 때마다 다들 으레 그렇듯, 그녀는 자기 자신과 간단한 영혼의 대화를 나눴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진정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고 환희로 가득한 마음을 가진 것이, 그리고 창조적인 삶을 피부에 와 닿듯 생생하게 느껴 본 적이 대체 언제였는지를 자문해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호기심이 뻗쳐 가는 길을 따라갔다. 그녀는 스케이트 한 벌을 샀고,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적당한 링크를 찾아냈으며, 개인 지도를 해 줄 코치를 고용했다. 일주일에 세 번, 수전은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낮 시간 내내 고달픈 직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 바로 그 숨 가쁜 시간에 스케이트를 탔다. 그녀는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타고 또 탔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정말 사랑했다. 어쩌면 예전보다 그 활동을 더 사랑하게 된 이유는, 이제 어른이 된 그녀가 자신만의 기쁨을 향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를 마침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주었고, 나이를 잊게 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저 일상의 소비자로서 매일 주어진 일들을 의무적으로 처리하는 수동적인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자신으로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갔다.
엘리자베스 길버트, [빅매직]
매일 이를 닦고 세수를 하듯, 나 자신과 영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나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였다. 치열하게 연애하던 때로 돌아간 듯, 내 감정을 달래 보려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선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 감정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지쳤다, 화가 난다, 더 이상 어쩌란 말이냐라고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나에게 질문을 해본다. 분노, 투사의 장막에 갇혀 이성적인 사고로 이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그저 고향으로 돌아와 계획한 대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위기다! 이 상황을 탈출해야 하는가? 아니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안 것뿐이다.
1.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첫 번째 산을 오르면서 마지막에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인가?
2.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3. 그것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있는가? 포기할 수 있는가?
4. 포기하는 것이 도피는 아닌가?
5. 지금 즐거운가?
앞선 모든 질문에 현란하게 답하던 나는 마지막 질문에서 생각이 멈춰버렸다. 나는 지금 즐거움을 잃은 상태였다. 아, 분명히 나는 즐거웠기에 여기까지 온 것인데, 왜 지금은 그렇지 못한가? 사람들을 조금 더 많이 만나게 되었을 뿐인데, 섬세한 나는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외려 더 크게 만들어 나와 그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고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정신적 위기 상황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올라왔다. 내 변연계가 날뛰고 있었다.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처럼 보였다. 그만둘 구실도 꽤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차올라 끓어 넘칠 때면 글을 썼다. 기계식 키보드에서 부드럽게 튀어 오르는 손가락 끝, 그 말랑말랑한 감촉을 느끼고 있자면 이윽고 내 영혼은 고요해졌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그 순간의 내가 스며든 글을 몇 번이고 곱씹어보며 나를 안아주었다. 부모님이 한창 열정을 다해 싸우던 시절, 아직은 '생각'이라는 것보다 몸의 '감각'이 우선인 그때처럼 공포와 두려움을 여전히 잘 소화해내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기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두려움을 알고자 하는 동시에, 감정 또한 비우고 채우는 연습을 반복했다. 이렇게 계속된 영혼의 대화는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타의가 몇 방울 섞인 최선이라고 여기는 길을 따라오긴 했지만,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줄기를 한가닥 한가닥 골라내며 왔기에 10년 이상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반드시 채워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어느새 7년째라는 것도 분명 이 일에 애정이 있음을 말해준다. 단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대하며 춤추는 내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 늪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서 그저 살고자 허우적대던 나는 뜻밖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많이 헷갈렸다. 즐겁지 않다고 느낀 순간, 지금껏 잡고 있던 모든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해서 하고 싶은 것 사이 너무나 큰 간극이 느껴졌기에 잘하는 것을 버려야만 좋아하는 것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하는 것 안에도 내가 뿌리고 가꾼 애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말했듯,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 창조성에게 부담을 안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성에서 생활비를 짜내려다 결국 그 창조성의 씨를 말려 죽이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부터 자유롭고자 해온 만큼 완전히 순수함 그 자체로 내 사랑스러운 창조성을 대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될 수는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잘해야 할 의무는 없다.
신은 인생의 커다란 선물을 고난으로 포장해 주신다는 뻔한 말이 따스하게 다가오는 지금, '현재'를 살기 위해 기쁘고 즐거운 것들로 하루를 채우려 한다. 태피스트리의 무한한 가닥을 하나하나 엮어온 나의 시간들에 경의를 표하면서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들을 꾸준히 함께 하다 보면 두 번째 산, 세 번째 산도 오르리라. 아름다움과 사랑과 풍요는 내 것이니.
내게는 내 삶과 생각, 감정 모두를 선택할 힘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그저 기쁨으로 행하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내가 되기를.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