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미학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이란.

by K Y Shin




물건을 버릴 수 없는 성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버릴 수 없다고 믿을 뿐이다. 심리학에서 ‘학습성 무력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는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고 그럴 능력이 있는데도 몇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에 상황을 개선하려는 마음조차 없어진 것이다. 왜 버리지 못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면 머지않아 버릴 수 있게 된다. 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성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버리지 못하는 유형도, 버릴 수 없는 성격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당신이 잘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버리고 비우는 기술이 미숙할 뿐이다. 버리는 습관 대신 버리지 않는 습관을 익혔을 뿐이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물건은 남과 비교해서 갖고 싶었던 물건이 아니라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내가 고른 물건들뿐이다. 누군가에게 조종당해서 산 물건이 아니다.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미니멀리스트가 되면 물건을 살 때 남이 아닌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나는 내게 필요한 모든 물건을 갖고 있다. 부족한 물건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엄마는 버리지 않는 습관을 단단히 키워온 사람이었다. 여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잡동사니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넘쳐날 뿐 아니라, 다른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바깥에 버려진 작은 선반이나 책장 같은 것들까지도 엄마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정말로 필요한 물건도 아닌, 어떻게 리폼이라도 해서 필요한 물건 흉내라도 내보지 못하는 그것들의 역할이 단 하나 있었다면, 우리 집을 떠돌며 시시때때로 부부싸움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우리네 엄마들이 다 그렇게 알뜰살뜰하게 아끼고 나눠 쓰고 고쳐 쓰며 살지 않았냐고 이해하기에는 엄마는 약간 결이 달랐다. 가난한 집 아들들 아래 첫 딸로 태어나 맏딸이지만 맏딸스럽지 않은 묘한 위치로 성장한 엄마는 오빠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라며, 2남 5녀 중 유일하게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도 갔다. 그만큼 애살도 욕심도 많았을 텐데 스스로 충족시킬 만큼 진취적인 길을 이어가지 못해서였을까. 엄마의 채워지지 않는 어떤 구석들을 계속 그렇게 메워보려 했던 것일까.


그런 연유로 드디어 참을 수 없는 한 인간이 나서게 된다. 설거지와 걸레질로 우리 집 환경 및 위생 부문에 참여하기 시작한 나는 가끔씩 집안 대청소를 주도하게 된다. 주도라고 해봤자 참여 인원은 나뿐이지만. 엄마의 꽉 찬 서랍장 구석구석 박혀있는 쓰고 남은 새 냅킨들이 소복이 모인 봉지, 빵 봉지 묶는 그… 철사 끈(트위스트 타이), 끝이 엉켜버린 짧은 케이크 박스 포장 끈과 같은 것들…. 몇 년이 흘러도 돌아보지 않을 그들을 골라내는 과정에 희열을 느끼며. 다행히 그 시간들이 남긴 것이 있었으니, 그때 시작된 내 혹독한 검열 방식은 의외로 소비 철학을 세우는데 보탬이 되었다.




시행착오는 필요했다. 학창 시절, 만 원짜리 티셔츠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늘 예상보다 앞서는 보푸라기를 향한 실망과 유행에 대한 기준 없이 거듭된 만 원의 실패들이 모여 점차 '취향'이라는 것이 그 윤곽을 드러냈다. 나는 나름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을 선호하는데, 가끔 출근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학생 같다거나 매일 교복만 입냐는 식의 이야기를 할 때면, 표현하고자 하는 나만의 정체성과 반응 사이에 아주 약간의 괴리를 느낀다.


어쨌든 아침에 옷장 앞에 서서 마치 교복을 꺼내 입는 식의 부류임은 인정한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바지를 어떻게 입어도 괜찮은 색깔로만, 그리고 마찬가지 상의들과 조합을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취향이 같은 사람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만 드나들며 적은 시간을 투자해 큰 즐거움을 얻는다. 이런 사람일지라도 패션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차려준다면 기쁘겠다. 관심의 질감이 조금씩 다를 뿐이니.


사이즈가 말해주지 않는 많은 것을 상세 정보 글로 알 수 있는데, 거기에 확대 컷을 통해 옷감을 만져볼 수 있다면 온라인 쇼핑에 실패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며 결국 얄짤없이 사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솟구치는 자린고비 아드레날린! 아, 다행이다. 반품의 귀찮음을 겪지 않고, 돈까지 아껴버렸으니. 쓰다 보니 왠지 지독한 자린고비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마찬가지로 지불 능력이 적을 때 예쁜 쓰레기를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라 생각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떠나본 외국에서 사들고 온 나무껍질 앨범이 수년째 맴돌다 사라져 버린 후, 여행지에서의 매력적인 소품조차 그것에게 내어줄 적당한 자리를 떠올릴 수 없다면 결코 사지 않기로 했다(빠르게 포기한다).






채우고 싶은 마음이 계속 보글보글 떠오를 때, 나는 먼저 비운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정말로 '필요한' 물건들만 살 수 있는 단호함 뒤에는 정리의 힘이 있었음을 느낀다. 진정한 정리는 내게 진짜로 필요한 물건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까지라고 생각하는데, 미니멀리즘이 한창 유행하기 전에도 내게는 일정하게 비우는 습관이 있었다. 비움의 주기는 경향성을 보이는데, 내 물건들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호해지는 시점이었다. 그만큼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간다는 것이기에 주기적으로 내 물건들의 쓰임을 돌아보며 거르고 걸러 소비 능력 또한 갈고닦았던 것이다. 채우고 싶은 마음이 계속 보글보글 떠오를 때, 나는 먼저 비운다.


이렇게 물건의 쓰임에 대한 반복적 고찰 뒤에도 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작은 의문이 하나 남는다. 기능을 넘어선 아름다움의 요소에 꽤 집착하는 편인데, 그 점이 되려 어떤 물건과 신중하고도 오랜 인연을 유지하는데 중심을 잡아준다. 타인의 시선에서 퍽이나 자유로운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우리에게 기대되는 것들, 어떤 직업이나 지위에 '어울린다'는 말로 익숙하게 들이대는 잣대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그러하기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이 가진 어떤 속성도 '나'라는 존재의 본질에 닿지 못한다. 그저 그것으로 내가 아름다움과 사랑과 풍요를 느끼는 순간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러한 화학작용에 참여하는 주체는 오직 나 하나뿐이다. 철저히 내향적인 덕분에 결정장애라고는 없이 얼마나 편안한지.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최소한의 굴레에서조차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오로지 세상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오직 나의 호오로 선택하려 한다.


나는 마크 주커버그의 생활(生活)을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