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K Y Shin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부모가 의도한 최선의 것이라고 확신한다. 부모가 지속적으로 아이의 성장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는 경우에도 그 불행하고 소외된 감정 또한 부모가 그렇게 느끼도록 의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불행한 감정을 자주 느낀 아이는 … 중략 …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을 추구하게 된다. 부모가 자신을 보살펴주는 방식 그대로 자기 자신을 대하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불행한 감정을 다시 느껴보려고 시도하는데, 이것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잘못된 믿음을 갖는다.


마사 하이네만 피퍼, 윌리엄 J. 피퍼, [스마트 러브]






작은 방이었다. 정갈하게 누워있는 두 구의 시체 위에 엎드려 꺽꺽대며 울고 있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들은 부모였고 소녀는 이제 완전히 홀로 된 모양이었다. 질병이 그들을 앗아간 듯 보였고, 그 소녀는 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모를 구하지 못한 소녀의 처참한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사무치는 외로움이 폭포수처럼 나를 휘감아 삼켰다.


이윽고 배경은 왁자지껄한 시장으로 바뀌었다.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 색깔의 치마저고리를 입은 소녀는 씩씩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아 어떻게든 인생을 개척해나간 듯하였다.



'뭐야, 전생에 이렇게 지독하게 외로웠어?'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전생을 본듯한 아주 묘한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고독한 정신적 사투를 벌이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던 중이었다. 문제의 근원적 형체를 몰랐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였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난 이 순간, 문득 내 안에 깊숙이 숨어있던 질병에 대한 공포,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고 홀로 남을지 모른다는 절망적 두려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에게 부모는 그야말로 우주다. 이 세상 전부다. 잉태된 순간부터 전해오는 감각과 그 감각을 받아들이는 방법, 부모의 생각과 행동, 어떤 상황을 마주하고 느끼는 감정과 대응하는 방법까지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고 전적인 믿음으로 흡수한다. 그런데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사랑으로 포장한 걱정이나 두려움을 끊임없이 자식들에게 주입하는 실수 또한 쉬이 범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 아주 익숙하게 퍼져 있는, 도무지 쓸모없는 관념들이 부모의 입을 통하여 여전히 빈번하게 전달되고 있다. 너는 몸이 약해. 찬 것 먹으면 탈이 나. 조금만 추우면 감기에 걸려. 이러면 아파, 저러면…….


이렇게 심어진 씨앗은 여러 불순한 의도들이 뒤섞여 탄생한 각종 건강 프로그램이나 만연한 건강식품으로도 그 작은 숨을 이어간다. 언제나 노오력을 짜내는 사회 분위기나, 무엇을 얻는 데 있어(그러니까 건강조차) 쉽고 빠른 길을 원하는 마음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에서 어느 하나의 잘못이라 말하기 어렵겠다만, 그들이 무엇이 어디에 좋다고 떠들면 재래시장에서조차 동이 나고, 몸이 어떠하면 무슨 병이다라고 떠들면 해당 과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린다. 지식의 탈을 쓰고 불안을 조장하는 저급함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란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테다. 의료 접근성이 최고인데 반해 '건강'에 대한 믿음은 매우 약하디 약한 사회이다. 우리나라의 기대 수명을 포함한 각종 건강 지표한국인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건강상태는 최하위 수준이다. 15세 이상 인구 중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한국이 32.0%로 가장 낮아 OECD 평균인 67.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다정하고 무례한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체'나 '건강' 부분에 있어 나는 그다지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또한 엄마는 미끄럼틀에서 장난치다 곧 고꾸라질듯한 아이를 조용히 뒤에서 안기보다는, 사자후를 내지르며 그 목소리에 먼저 놀라 자빠지게 만드는 부류였다. 아버지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술을 좋아했다. 몸을 이기지 못할 만큼 마시고 게워내기가 일상이었다. 저러다 죽으면 어쩌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두 분이었지만 사랑했다. 다양한 두려움과 공포가 내 안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던 것이다.




2019년, 왠지 모를 지독한 건강염려증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꽉 움켜쥐고 있던 삶을 얼마만큼 느슨하게 놓아야 할지 몰랐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 '나'를 위해서도 어떻게든 일상을 이어가야 했다. 내 어두운 부분을 파고들어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상처라는 게 있다면 돌보기로 했다. 대를 이어 끝없이 흐르는 부정적 영감은 이제 끊어내야 할 때였다. 끝없이 멘토를 찾아 헤맸다. 책 속의 거장들을 만나는 시간은 늘 그렇듯 참으로 즐거웠다. 현실의 멘토로부터 받은 편지도 읽고 또 읽었다.


'두려움에서 많은 것들이 파생된다. 거절당할까 두려움으로 분노를 억압한다. 그 과정에서 나조차 내 감정을 받아주지 못한 채 세상 기준에 맞추어 나를 억압하곤 한다. 이는 살아가는 데 사용할 도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방비 상태이므로 우리는 더욱 두려워 '방어기제'를 찾게 된다. 그 도구는 바로 우리의 감각과 감정이다. 자연스러운 표현을 두려워하는 것은, 허용받아보지 못한 채 억압된 감정이 너무 많이 쌓여 이를 스스로 다룰 자신이 없을 정도로 화석처럼 굳어있기 때문이다. 분노 표출을 조금씩 하면서 나의 욕구를 하나씩 인지 하다 보면 두려움이 줄어들면서 불쌍한 어린 내가 보이게 된다. 어린 나를 인지하고 안아주면 더 이상 두려움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떠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 '나'와 함께 할 때, 이 삶을 더욱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얼마나 힘들었는가… 내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깨어져 나갈 때…. '


인간이라면 가진 '불안'에 대해 알아가며 언제나 길이가 짧아진 근육에 갇힌 채 살아가는, 불행의 감정에 중독된 나의 대부분을 스스로 치유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로 내 감정을 마주하지 못했다. '감정'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했고, 그 방법도 몰랐다. 풍선이 터지기 직전, 바람을 빼주는 내 나름의 방법으로 그저 버텨온 것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준다는 게 대체 무엇인가? 이 세상의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끝없이 나의 경계는 부서져 갔고, 동시에 확장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그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곧게 서기 위해 마음 근육부터 키워야 했다. 내가 정한 한계 속에 갇혀 있었던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 안의 어떤 것이 두려움으로 비추어졌을까. 그 또한 내가 지나야 했던 길이다. 내 의식 수준이 거기에 머물렀고, 더 큰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상처라 규정짓고 끊임없이 과거를 헤매며 '나'를 이해하고자 했으나 이러한 시도는 언제나 의미가 있다. 관념의 시공간에 갇혀 아파한 만큼 그 순간에 머물며 충분히 울었기에 이제 떠나보낼 수 있다. 아이들의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 또한 오롯이 받으며 어느덧 진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폭닥한 느낌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 반응하는 나를 점차 바꿔간다. 0.000001초 만에 튀어나오려는 습관적 반응을 알아차리고 선택해본다. 느껴지는 감정을 모두 허용하고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 본다. 그렇게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고, 또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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