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 없는 두려움의 증폭

by K Y Shin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있는 암시는 여러분 자신에게도 주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생각과 마음은 창조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코 남이 말하거나 행한 일이 아니라, 그들의 말이나 혹은 행위에 대한 자기의 반응이라는 단순한 진리에 눈을 떴다.


조셉 머피, [잠재의식의 힘]







잠깐 유방암 얘기부터 꺼내어보면, 한국유방암학회의 유방암 생존자 연구 2018년 통계에 따른 우리나라 전체 유방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1.2%, 10년 생존율은 84.8%에 이를 정도로 다른 암과 비교하여 높다. 병기 별로 보아도 유방암 0기는 5년 생존율 98.3%, 10년 생존율 95.4%이고, 1기 환자도 5년 생존율 96.6%, 10년 생존율은 92.7%에 달한다.


게다가 조기 유방암으로 분류할 수 있는 0기나 1기에 해당하는 환자의 비율, 즉 조기 진단이 늘고 치료법이 발달하며 생존율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생존율이 높아진 데 따라 유방암 생존자의 합병증 관리나 삶의 질 유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렇게 90%를 훨씬 웃도는, '암'이란 단어와 어울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수치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에서 10년은 때로는 흉측한 슬픔으로 저장되어, 언제부터인가 계속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실습 시절부터 고통이나 죽음을 앞에 두고 번번이 눈물이 터지곤 했는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눈물을 삼키며 왜 이토록 죽음에 건드려지는지, 주책맞게 넘치는 나를 붙잡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늘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 내 몫을 하며 물에 물감이 풀리듯 병원의 일상은 익숙한 것이 되어갔다. 그런데 일의 방향을 조금 바꾸자, 내 손전등은 문헌적 통계의 경계를 넘어선 고통스러운 사례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조직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오신 분께 유방암이라는 결과를 전하려 할 때면, 위에 언급한 수치가 아닌 그 나머지 숫자나 말기 분들의 심상이 여지없이 떠올랐다. 척박한 생존율 그래프가 그려졌다. 미리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환자를 마주하기 망설여졌다. 어떻게 전해야 하나, 그 짐을 함께 짊어질 누군가 오셨을까, 용기나 의지, 희망 같은 것들… 내가 전할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듣는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예상한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초반에 내가 경험한 모습들은 한결같았다. '그들은 대부분 좌절하거나 울거나 분노한다'라고 당시의 내가 써두었다. 내 마음대로 재단한 그의 짐을 또 조금이라도 덜고자 진단 이후 이어질 치료나 예후, 많은 불확실한 것들에 대하여 한참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미지의 것,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 가. 한 톨이라도 줄일 수 있기를, 거창하게 의지를 불태울 것 까지도 없이 담담히 주치의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고만 생각하기를 바랐다. 간혹 치료를 거부하고 산으로 들어갔던 몇 분이 전신 전이가 되어 돌아오신 사례를 보았기에 내 선에서 그 가능성을 원천 봉쇄할 터였다. 나는 정말로 그것이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사약을 앞에 두고 어린아이의 어깨를 움켜쥔 채 '이거 진짜 하나도 안 아파'하고 의미 없는 말을 내뱉는 것 같은 통제의 죄책감에 절여진 기분이 들었다. 실상은 환자 분이 자연스레 생을 떠날 것이 아니라, 괘씸한 이 질병의 끄트머리를 쥐고 돌아가실까 슬프고 불안한 나를 달래던 것이었다.


육체는 고단했고 마음도 지쳐갔다. 심지어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연이어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해괴망측한 믿음까지 생겨났다.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완치란 단어를 말하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절망 속에 있었다. 사랑이 아닌, 죽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 또한 죽어가고 있었다.



직업으로서 존재하는 내가 과연 얼마나 그들의 인생에 유익할까. 일찍 발견할수록 부풀던 보람과 자부심, 마치 암이라는 악으로부터 한 여성의 삶과 가족까지도 지켜낸다는 소명의식의 단단한 껍질이 부서지려 하고 있었다. 그 끝에서 애처롭게 흔들리는 나를 보았다. 의학적으로 최선의 상황을 누렸더라도, 그때부터 시작된 삶의 긴 시간 동안 쏟는 에너지와 감당해야 할 불안의 총합과 짧게 덮친 깊은 고통 중에 과연 어느 쪽이 무거운가. 인간이 경험하는 증례의 지층화에 지나지 않는 의학의 실존 이유나 직업적 소용에 대한 뿌연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때때로 나는 메모지에 휘갈겨 쓴 글자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검진은 유방암 사망률을 21-29% 낮춘다. 천천히 자라는 유방암을 가진 환자에서 더 침습적인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다. 어떠한 경우에도 유방암 환자의 예후에 있어 스크리닝(검진)은 명백하게 유익하다…….'


그러다 꿈에서 실마리를 보았던 것이다. 인간은 각자 고유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로 말미암은 공포나 두려움을 만든다. 삶에 의욕을 잃어버린 환자들, 그 아픔에 집중이 되고 질병과 죽음과 홀로 남겨진 이들의 슬픔까지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 것들이 애초에 내 안에 없었다면 반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끊임없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읊으며 걱정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부모 아래 불행의 감정에 익숙한 아이를 스쳐 지나던 공포는 심리적 조건화로 마음에 남아 세력을 키워갔던 것이다.


거기에 '공감'에 대한 내 오만한 판단과 병적 완벽주의까지 더해졌다. 진정한 공감이란 그저 '너'의 감정과 생각을 진심으로 듣는 태도나 마음 그 자체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너의 모든 것을 겪어야 비로소 내 한마디가 진심의 자리를 얻게 된다고 굳게 믿었다. 질병이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끝없이 곱씹었다.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나는 문득 죽음 이후를 안다면 인간으로서도 좀 더 초연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나 무한한 허용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 심지어 죽음의 순간조차 ― 의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그 영혼의 선택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