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연재
w.이루다
어떤 사람들은 왜 스킨십으로 친밀도를 나타내려 할까요? 가족이나 찐친, 연인 사이가 아니고서야, 살갗이 스치는 것도 불쾌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 하더라고요.
특히 누군가를 뒷담화 할 때 갑자기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하거나, 얼굴을 들이밀고 귓속말하면서 언어와 비언어를 동시에 사용하곤 하는데요. 그런 행동에 내포된 뜻은 하나밖에 없죠. ‘너도 동감하지?’, ‘너도 내 편이지?’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스킨십을 피하거나 거리를 두면, 개꼰대는 급격히 빈정 상하면서 단번에 상대를 적으로 인식합니다. ‘너 되게 예민하다.’, ‘까탈스럽다.’며 나아가서는 사회생활을 못 한다고 속단하죠.
개꼰대는 신체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퍼스널 스페이스를 전혀 지키지 못합니다.
평소에는 요즘 애들~이라면서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 고깝고 불만스러워하더니, 어쩌다 그 사람이 평소와 다른 스타일로 꾸미고 왔다거나 휴가를 내면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처럼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개꼰대 :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퇴근하고 어디 가나 봐~
이루다 : 아, 네. 저녁 약속 있어서요.
개꼰대 : 약속 누구~? 남자~?
이루다 : 그냥 친구요.
개꼰대 : 남자~?
이루다 : 그냥 친구요.
개꼰대 : 그냥 친구라면서 그렇게 꾸미고 와? 데이트 같은데~ 어디 가는데~?
이루다 : …….
개꼰대 : 응? 어디~?
이루다 :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어요.(거짓말)
개꼰대 : 뭐 먹어~?
이루다 : …….
개꼰대 : 근처에 뭐 먹을 게 있나~?
이루다 : 만나서 정하려고요.
개꼰대 : 밥 먹고는 뭐 하는데?
글자만 보는데도 속이 답답하지 않나요? 첫 줄만으로도 충분히 의견 전달이 되었건만, 거기서 끝내도 되는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자 친구고 데이트면 더 큰일이 납니다. 호구 조사 들어가거든요. 왜 부모님도 묻지 않는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이 직장 집안 외모 학벌 등 끊임없이 궁금해하기 때문에 차라리 아예 선을 긋는 게 낫습니다. 만나는 사람 없다, 비혼이다, 라고요.
문제는 그럼 또 이어진다는 거죠. 왜 안 만나? 왜 소개 안 받아?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왜 비혼이야? 왜 결혼 생각 없어?
제발 그만.
다음 상황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입니다.
개꼰대 : 왜 휴가 냈대?
이루다 : 아, 네. 그냥 하루 쉬려고 냈습니다.
개꼰대 : 어디 아파?
이루다 : 아뇨, 그냥 쉬려고요.
개꼰대 : 그럼 어디 가?
이루다 : 아뇨ㅎㅎ, 그냥 진짜 쉬려고요.
개꼰대 : 뭐 하고 쉬는데?
이루다 : …….
개꼰대 : 쉴 때 뭐해?
이루다 : 정말 아무것도 안 해요.(진짜 진심으로 침대에서 아무것도 안 함)
개꼰대 : 아니, 내가 뭐 어디 가서 말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되게 그렇다~
죄송한데, 말 끝나자마자 타 부서 직원 찾아가서 얼마나 대단한 사유라도 되냐며 애가 진짜 정이 안 간다고 험담하셨잖아요.
다른 사람의 옷차림과 퇴근 후 일정, 휴가에 관심을 두는 만큼 일을 똑바로 해주면 참 좋겠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요. 그랬더니 또 저의 사회생활을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개꼰대 : 이루다 씨, 안 좋은 일 있나 봐?
이루다 : 네?
개꼰대 : 표정도 안 좋고, 얘기도 잘 안 하고. 일만 하네.
이루다 : 아… 제가 할 일이 좀 쌓여서 그랬나 봐요.
개꼰대 : 일은 이루다 씨 혼자 다 하는 줄 알겠어. 좀 웃으면서 해. 누가 괴롭히니?
당신이요. 당신이 괴롭히고 있잖아요.
그리고 당시 저는 진짜로 저 개꼰대의 일까지 모두 떠맡느라고 병이 난 상태였고요. 그런 상황에 웃으면서 일하는 게 더 무섭지 않나요? 유명한 짤도 있잖아요, 출근길에 무표정한 직장인보다 웃고 있는 직장인이 더 광기라는.
뭐, 회사가 즐거울 수도 있겠죠. 하는 일 없이 노가리만 까다가, 어쩌다 일이 생겨도 저 같은 애한테 떠넘기면 되겠고, 남 관찰하면서 욕하는 맛에 회사 다니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습니까.
그런데 안 그런 사람도 있는 거라고요. 안 그런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요. 회사는 일하는 곳이지, 룰루랄라 웃고 떠드는 파티 현장이 아닙니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는 겁니다. 상식 아닌가요?
어린 친구들, 젊은이들이 제가 꼰대인데도 잘 따라주었던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었거든요.
공과 사가 뚜렷해서 그들에 대해서 사적으로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실제로도 관심 없었고요. 그랬더니 오히려 저를 좋아하더군요. 다가와서 묻지도 않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요.
요즘 이런 게 유행인데, 아세요?
저 오늘 여자 친구 만나는데, 이거 옷 어때요?
과제 너무 많아서 죽을 것 같아요….
커피 안 좋아하세요? 저는 맨날 마시는데, 드시는 걸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요.
먼저 말을 걸어오면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가고 내 얘기도 들려주면서, 그때부터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친해지게 되는 겁니다. 사실은 관심도 없으면서 사생활 파헤치려는 듯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거나, 꼬치꼬치 캐묻는 게 아니라요.
윗사람이 저한테 그렇게 하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에, 저는 아랫사람한테 절대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정답인 것 같아요. 내가 싫은 행동을, 남한테도 하지 않는 것. 내가 겪은 고통을, 아랫사람한테 똑같이 내려주지 않는 것.
반면 개꼰대는 생각하죠.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 지금 힘들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애들이 너무 차가워~ 물어보기만 하면 싫어하더라?
어느 시대나 세대나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더’ 힘들고 ‘덜’ 힘든 것 없이 다들 힘들었고, 계속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 겁니다. 누가 더 힘든지 겨루자는 게 아니고요, ‘나는 이런 힘듦이 있었는데 너는 이런 힘듦이 있구나.’ 서로의 다른 힘듦을 알고 존중하면 됩니다.
또한 물어보기만 하면 싫은 게 아니라요, 사적인 질문만 하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겁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 나누면 돼요, 회사에서는 공적인 수준의 질문만 하면 그 요즘 애들도 친절하게 잘만 대답해 줍니다.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요, 어린 친구들 쪽에서 먼저 마음을 열지 않는 이상 친해질 방법은 없어요. 그들에게는 윗사람이 아무리 잘해줘도 ‘윗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마음을 열고 싶은 거라면, 야속하게 들릴지라도 입을 다무세요. 청년들을 위한 조언? 충고? 우리 모두 청년기를 겪어 봐서 알지 않나요?
제일 말 안 듣고, 제일 자기주장 강하고, 제일 저밖에 모르는 세대. 이 세계에서 내가 온리원 주인공이라고 흠뻑 취해있는 세대가 청년기 아닌가요? 조언, 충고, 듣겠냐고요.
제아무리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소크라테스님의 말씀이라도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나 조언과 충고가 먹히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고, 조언과 충고를 필요로 할 때 그때 꼰대들의 라떼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늦지 않아요. 그러면 친해질 수 있어요.
그전까지는 제발 퍼스널 스페이스 좀 지켜주자고요.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07화.
커버이미지: Bedroom in Arles(1888)_Vincent van Go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