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화.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려요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연재

by 이루다

w.이루다




저는 먹는 속도가 느린 편입니다. 아무리 빨리 먹어도 20분 이상은 걸려요. 그보다 더 빨리 먹으려고 하면 100% 체합니다. 알약도 크기가 큰 약은 삼키기도 힘들고, 삼켜도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게 다 느껴집니다.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태어난걸?


그런데 직장인들은 어찌나 밥을 빨리 먹는지, 5분 컷이더라고요. 속도 맞추려다 체해서 토하고 어지러워질 바에야 안 먹기로 선택했습니다.

먹는 게 느릴 뿐 2시간이면 2시간 내내 끊임없이 먹는 사람인데요,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전부 제가 입이 짧은 줄 압니다. 차라리 그게 편해요. 입이 짧다고, 잘 안 먹는다고 핀잔을 듣기는 하지만 먹는 행위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보다 낫겠거니 합니다.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데도 음식 남기기를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순대국밥을 너무 좋아하는 상사분들을 따라서 날이 뜨거운 한여름에도 순대국밥을 자주 먹고는 했는데요, 원래도 먹는 속도가 느린 데다 뜨거운 음식은 특히 못 먹는 저로서는 고역이었죠. 제가 한 숟갈 퍼서 식히느라고 겨우 한 입 먹는 사이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상사와 동료 직원 전부 이미 식사를 끝냈더라, 이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 제가 계속 먹을 수 있겠나요.


개꼰대 : 편하게 먹어, 체할라.
이루다 :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루다가 먹는 모습을 3명의 상사와 직원이 지켜보고 있다)
개꼰대 : 김치 더 줄까?
이루다 : 아뇨, 아뇨.
(그리고 이루다가 먹는 모습을 3명의 상사와 직원이 지켜보고 있다)
개꼰대 : 잘 못 먹네, 맛이 없어? 원래 순대국밥 안 좋아하나?
이루다 : 아뇨, 아뇨. 뜨거워서요… 엄청 좋아하진 않는데 괜찮아요, 맛있어요.
(그리고 이루다가 먹는 모습을 3명의 상사와 직원이 지켜보고 있다)


점심시간이 어떤 사람 밥 먹는 장면을 구경하라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먼저 가시라고 해도 천천히 먹으라며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는데… 그게 더 부담스러워서 못 먹고 결국 일어났더니, “그게 다 먹은 거야? 어휴, 진짜 못 먹는다.”라면서 한숨을 쉽니다. 기어이 체해서 토하고, 새드 엔딩이죠.


그런 시간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저는 그냥 입 짧은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5분 정도 먹다가 다른 사람들이 다 먹은 것 같으면 저도 숟가락을 내려놨어요. 한숨 쉬며 뭐 제대로 먹는 게 있냐는 잔소리를 들었지만, 저로서는 살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물론 나중에는 그 몇 입으로도 체하긴 했지만요.

저는 이제 순대국밥을 먹지 않습니다. 트라우마예요.


아랫사람이 점심 메뉴를 정하는 회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초밥, 돈가스, 덮밥, 칼국수, 분식, 백반 등 여러 가지 메뉴를 제시하지만 계속 메뉴 선정에 토를 달던 상사가 “아이씨, 그냥 이거나 먹으러 가자!”라고 하면 그 ‘이거’가 점심 메뉴가 되죠.

처음부터 본인이 먹고 싶은 거 먹자고 하시면 될걸. 왜 괜히 아랫사람한테 메뉴 정하라고 시켜서, 사람을 순식간에 센스 없고 일머리 없는 사람이라며 욕하시는지.


또한 개인적으로 무의미한 관습 중 하나가 술자리 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를 때는 라벨을 가리고, 잔에 병이 닿으면 안 되고, 윗사람보다 낮은 위치에서 짠, 마실 때는 고개를 돌리고 등등. 그 한 테이블 안에 지켜야 할 사안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왼손잡이라 자꾸 자연스럽게 왼손이 먼저 나가는 바람에 무진장 애먹었습니다. 금도 의식하지 않으면 반사적으로 왼손으로 술병을 집어요.


그렇다고 술자리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는 당연히 지켜야죠. 술자리에서건 어디에서건. 오히려 술을 마시면 분위기가 풀어지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저는 술을 마셔야만 친해질 수 있는 사이는 그냥 친해지지 않는 게 맞다고 봅니다. 술을 마셔야만 할 수 있는 말은 그냥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가 의문인 점은 ‘술자리’ 예절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절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겁니다.


그런 술자리 예절보다… 술 마시다 인사불성 되어서 부하 직원한테 치대고, 취해서 막말하고, 고성방가에 추태 부리고, 집에 갈 때까지 아랫사람이 뒤치다꺼리해줘야 하는 게 훨씬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닐까요.

개꼰대들은 모르죠. 그들은 본인들이 아랫사람과 굉장히 잘 어울리고, 아랫사람을 무척 편하게 대해준다고 착각하고 있으니까요.


회식 자리에서 꼭 고기를 구워주시는 상사분이 있었는데요, 그런 사람이 없어서 놀랍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고기 구워주는 팀장이 어디 있냐? 나는 얘기도 잘 들어주잖아. 되게 꼰대 안 같지? 나랑은 말 통하지?


그 말을 함으로써 안타깝게도 개꼰대로 남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구워주신 고기는 감사히 먹었습니다.

얘기를 잘 들어주시는 게 아니라, 아랫사람이 기분 상하지 않을 말만 골라서 하는 거고요.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실은 이미 말이 통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아랫사람이 어느 정도 타협과 포기를 한 상태인 겁니다.

꼰대임을 부정하는 순간 꼰대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이런 일도 있습니다.

이전 화에서 저는 일할 때 뭘 안 먹는 성향이라고 말했었죠? 그래서 누가 간식을 줘도 먹는 행위 자체를 까먹습니다. 일의 흐름이 끊긴다고 할까요, 솔직히 먹기 싫을 때도 있고요.

그런데 개꼰대는 본인이 줬으니 먹는 걸 반드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그걸 언제 줬는데 아직도 안 먹었어? 먹기 싫으면 말을 하던가.


네, 그래서 한 번은 괜찮다고 안 먹겠다고 해보았습니다. 다음에 벌어질 일이 예상되시죠?


내가 못 먹는 거 주는 것도 아닌데, 이거 하나 받는 게 뭐가 힘들다고 그래?


네, 그래서 받고 이따가 먹겠다고 하면 다시 위의 상황으로 갑니다. 결국 개꼰대가 원하는 건 본인이 준 간식을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줬으면 하는 거죠. 알고는 있지만… 강아지 고양이도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습니다.


먹을 거 나눠주면 좋은 게 좋은 거지 예민하다고요? 네, 그 말도 맞습니다. 저는 예민해서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많아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싫어하는 음식은 쳐다도 안 봅니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주는 간식은 좋지만, 나한테 고통만을 주는 사람이 주는 간식은 싫어요.

그렇게 해서 사회생활 어떻게 하냐고요? 죄송한데, 개꼰대세요?


저도 꼰대라서 어린 친구들한테 제가 맞추기보다, 저한테 맞춰주는 게 확실히 더 편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나한테 더 편하다고 해서 남한테 그걸 요구하지는 않아요. 제가 싫은 건 남도 싫은 거니까. 내가 하기 싫으면 남한테도 시키지 말아야죠.


그럼 저는 어떻게 하냐고요? 일단 점원이 고기를 구워주는 고깃집을 갑니다. 아니면 완전하게 조리되어 나오는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술자리에서는 내 술 따라주면 고맙지만 안 따라줘도 마시고 싶을 때 마십니다. 다음.


제가 좋아하는, 제가 먹을 간식을 사요. 그리고 물어봅니다.


이루다 :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인데, 먹어볼래요? 초코 맛 좋아해요?
젊은이 : 네, 저 좋아해요! 저 주세요!
젊은이 : 아뇨, 전 안 먹을래요.


달라고 한 사람한테만 주면 됩니다. 다음.


이루다 : 저 커피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바쁘면 마실 메뉴만 알려줘요.
젊은이 : 네! 같이 가서 고를래요!
젊은이 : 네, 저는 아아요.
젊은이 : 아뇨, 전 안 먹을래요.


같이 가겠다는 친구와 가서 먹겠다는 사람들 것만 사서 오면 됩니다. 끝.


많이 어렵나요? 윗사람한테는 결정하기 전에 먼저 물어볼 거잖아요. 아랫사람한테는 왜 그렇게 안 하세요? 왜 그런 줄 아세요?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개꼰대인 거고요.


네? 제가 너무 꼰대스럽지 않다고요? 저 꼰대 맞아요. 고집을 절대 꺾지 않고, 어지간하면 사상이나 생각이 잘 바뀌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뭐래도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유지하는 꼰대. 그냥 제 가치관을 아랫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을 뿐이죠.


그게 대단히 의식 있는 올바른 사람이라서가 아니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상관없어서입니다. 내 한몫하고 살아가기에도 너무 벅차고 감당하기 힘든 인생이라, 남한테 간섭하거나 내어줄 여유가 없거든요.

왜 타인을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하는지, 그리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깨닫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아요. 개꼰대가 젊었을 때도 이미 개꼰대였고, 늙어서도 여전히 개꼰대인 것처럼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억지로 먹으려고 하면 고문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턱지고 앉아서 언제 다 먹나 지켜보고 있으면 그 음식 자체가 싫어질 수 있어요. 한 마디로 먹는 거로 트집 잡지 말라는 겁니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려요, 모르세요?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09화.

커버이미지: La Table de cuisine(1888-1890)_Paul Cézan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