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안 하고, 안 받자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연재

by 이루다

w.이루다




저의 사회생활 모토가 된 ‘안 하고, 안 받자.’는 꼭 야근이나 추가 수당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업무와 인간관계에서도 불필요하거나 괜히 찝찝한 감정이 들면 안 하고, 안 받는 게 나은 순간이 있더라고요. 기브앤테이크가 악용될 때죠.


기분에 따라 인사를 받는 개꼰대가 수상하리만치 아침부터 텐션이 높았던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인사했을 뿐인데, 과하게 손을 흔들고 콧소리를 내며 저를 반기셔서 오히려 당황했었죠.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다가와서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더니 커피를 사주신다고 하는 겁니다.

아무리 같은 성별이라도 왜 그렇게 스스럼없이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지 않고 스킨십을 하는지 불쾌했지만,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또 온종일 토라져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쾅쾅거릴 걸 알았기에 체념한 상태였죠.


개꼰대 : 이루다 씨~ 이번 주에 일이 많아 피곤하지~ 커피 마시러 갈까?
이루다 : 아, 저는…
개꼰대 : 가자, 가자~ 내가 사줄게~


이때 눈치를 채고 거절했어야 했습니다. 출근 직후기도 했거니와, 말마따나 너무 피곤해서 군말 없이 따라나섰어요. 커피를 주문하고 받아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중에, 다른 부서 직원 TMI나 윗분들 뒷담화도 묵묵히 들었습니다. 오전 업무 시간 내내 어째서인지 계속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하시는 모습도 인지는 했지만 일단은 모르는 척했죠.

그런데 팀점이 아니고서야 한 번도 같이 식사한 적이 없는데, 개인 카드를 건네면서 맛있는 걸 먹자고 하시는 겁니다. 이때라도 거절했어야 했습니다. 아직 개꼰대의 숨겨진 의도까지 읽어내지 못했던 저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점심 식사를 사 와서 사무실에서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됐어요.


개꼰대 : 이번 달에 우리 부서 행사 있잖아~
이루다 : 아, 네.
개꼰대 : 나는 뭐, 시설 관리나 할 줄 알지. 그런 건 이루다 씨가 잘하잖아~ 아이디어도 많고~
이루다 : …….
개꼰대 : 기안은 내가 올릴게, 행사 계획안이랑 준비 진행 다 할 수 있지?
이루다 : …죄송한데, 저도 지금 평가 보고서 때문에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개꼰대 : 야, 그렇게 따지면 다들 바쁘지~! 나중에 행사 끝나고 비용 처리 같은 자질구레한 건 내가 해줄게.
이루다 : …그럼 제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거니까, 기안도 제가 올리겠습니다.
개꼰대 : 어머? 그건 아니지~ 웃긴다~ 이건 원래 내 업무니까, 내가 기안 올리는 게 맞지. 계획안 이번 주까지 해서 줘.


대화의 흐름이 이해되시나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하고 있던 ‘평가 보고서’도 실은 개꼰대의 업무인데 그분이 못 하셔서 제가 맡게 된 거였고요. 본인이 본인 입으로 “원래 내 업무다.” 해놓고서 계획안부터 결과 보고서를 제가 다 작성하고, 행사 진행도 제가 다 했습니다.

심지어 결재 기안문 올릴 때도 아예 저를 본인 컴퓨터 앞에 앉히더니 작성하라고 맡기고 사무실을 나가시더군요. 제가 대신 해주는 건데 “자리 비켜줄게, 편하게 해~”라면서요.

말 그대로 과장이라곤 전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저 혼자 다 했어요. 그런데 기안 결재는 개꼰대의 이름으로 올라갔고요. 억울해서 일부러 붙임 파일 계획안을 PDF로 만들어 제 이름을 새겨 넣긴 했는데요, 큰 의미는 없었죠….


사무실 비밀번호를 저한테만 알려주지 말라고 할 정도로 평소에는 저를 몹시 싫어하시던 분이, 갑자기 친절함을 가장하며 커피와 식사를 사줄 때는 의심을 놓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분은 도대체 회사 와서 하는 게 뭔가 싶을 만큼 업무를 떠넘겼고, 그럴 때마다 퉁치듯이 커피나 점심 혹은 간식을 사더라고요. 기브앤테이크가 너무나도 악용된 사례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도저히 못 버티고 상급자에게 말씀드려 저한테 업무를 ‘일부’ 떠넘기지 못하게 되자,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예전에 같은 부서였던― 다른 부서 직원분이 개꼰대의 자리에서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도 하는 말이, “이루다 씨는 하도 바빠서, 내 거 봐줄 시간이 안 된다더라고~”.

이 정도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해도 할 말 없지 않나요?


계약직원이었던 저는 매일 같이 야근하는데, 정직원에 승진까지 한 개꼰대는 매일 같이 칼퇴였습니다. 한 부서의 업무가 100이라면 80은 제가 처리했어요. 가끔 너무하다 싶으면 먹을 걸로 퉁.

그러니까 필요 없다고요. 안 하고 안 받고, 안 받고 안 하겠다고요.

그때부터였어요. 일 못 해도 착한 사람이 낫다고 생각했던 제가 싸가지 없어도 괜찮으니 일 똑바로 하는 사람이 백만 배 낫다고 가치관이 바뀌게 된 시점이.

뭐, 개꼰대는 보통 싸가지도 없고 일도 못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요.


사실 개꼰대라고는 해도 대단하긴 합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윗사람은 길게는 30년 이상 회사 생활을 해온 분들이잖아요. 더군다나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환경에서요. 그건 정말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연차가 있어서 뭘 새로 하기 귀찮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개꼰대들은 정말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책임지기가 싫은 거예요.

만약 본인의 업무를 누군가한테 떠넘겨서 처리했는데 문제가 생기잖아요? 절대 책임 안 집니다. “내가 한 거 아니야!” 노발대발하면서, 왜 제대로 확인도 안 했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와요. 만만한 게 젊고 어린 직원이죠, 더구나 계약직은 욕먹어도 잘려도 그만 아니겠어요?


개꼰대가 왠지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반대로 너무 텐션이 높거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다가가서 질문하지 마세요. 신경 쓰인다는 이유로 나서서 물어보는 순간 좋지 않은 일이 나한테 벌어지게 됩니다.


다시 주제를 이어가자면, ‘퉁치다’는 같은 종류일 때 가능한 말이 아닐까요? 업무를 커피로 퉁치는 게 아니라, 업무를 떠넘겼으면 떠넘긴 사람의 다른 업무를 가져가야 한다는 거죠. 업무와 음식, 공통점도 전혀 없고 아예 다른 카테고리에 있잖아요? 어떻게 그걸로 퉁이 될 수가 있습니까?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시간 약속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아무리 친했어도 계속 늦으면 결국에는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고 차차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간혹 “늦었으니까, 밥은 내가 살게.” 하며 퉁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게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순 없어요. 각자의 사정이 있고 성향이 다르니까. 다만 저는 어느 순간 그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더란 말입니다. 제 문제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과 잘 맞지 않으니 안 어울리겠다는 소리고요.


처음에는 괜찮았습니다. 기본 약속 시간을 워낙 안 지키는 사람이 있고, 저도 그런 사람은 늦게 오는 걸 전제로 하고 만나니까요. “늦었으니까, 밥은 내가 살게.”를 웃으면서 수긍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시간에 오지 않은 ‘미안함’이나 ‘사과’의 말은 사라지고, 당연한 듯이 밥 사면 그만이지 마인드가 되더군요.


기다리게 해서 진짜 미안해. 밥은 내가 살게.
곧 도착. 밥 살게.


이 두 문장은 같은 걸 말하고 있으면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적어도 실수와 잘못을 미안해하고 겸연쩍어할 줄은 알아야죠. 본인이 시간에 둔감하다고 해서 상대의 시간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저와는 안 맞습니다.

1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1시‘까지’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것이 맞습니다. 대충 1시‘쯤’ 도착해서 늦으면 밥으로 퉁치는 게 아니라요. 저번에 12시에 출발했더니 1시 15분에 도착하더라, 그러면 다음에 만날 때는 11시 45분에 출발해야 하는 겁니다. 똑같이 12시에 출발하지 말고요.

제가 꼰대 같나요? 말씀드렸죠, 꼰대 맞다니까요?


업무 대신하는 값으로 받는 식사, 커피, 간식. 내 시간 낭비하게 한 값으로 받는 식사, 커피, 간식. 진심으로 필요 없습니다. 저도 돈 벌고요, 제 돈으로도 사 먹을 수 있어요. 제 돈으로 사 먹으면 오히려 훨씬 더 편하게 맛있는 걸 먹겠죠. 기브앤테이크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브앤테이크는요, 10번을 주고 1번을 받더라도 받은 것에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1번을 주더라도 그 속에 다른 의도를 숨겨두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어야 하고요. 그만큼 돌려받기 위해서, 내 몫을 챙기고 더 큰 것을 바라는 목적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업무를 떠넘길 작정으로, 이미 늦을 작정으로 대접한 음식은 상대에게 ‘주는’ 게 아니라 빼앗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느니만 못한 거죠. 되도않는 기브앤테이크 할 바에야 더치 하자고요. 각자 알아서 제 할 일이나 똑바로.


기브앤테이크에서 왜 기브(Give)라는 단어가 먼저 나오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기브앤테이크는 받는 데 관심 없고 주는 것에 생색내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에 주는 거고, 그 마음을 알고 보답하려는 사람이 나한테 돌려주면 고맙지만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야 해요. “내가 줬으니까 내놔.”는 기브앤테이크가 아니라, 속물일 뿐이에요.


만약 내가 타인에게 늘 주기만 한다고 느껴진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안 하고, 안 받자.’를 실천하시면 됩니다.

주기만 하는 것에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주지도 마세요. 받는 걸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 때만 주면 됩니다. 이미 많은 걸 줬더라도 인생 경험한 셈, 사람 걸러낸 셈 치고 앞으로 안 주면 돼요. 그게 이 개꼰대로 가득한 끔찍한 세상에서, 나 스스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내가 받기 싫은데 억지로 먹이려 하고, 하기 싫은 일 강제로 떠맡기고, 제멋대로 퉁치는 행위는 단순 꼬장입니다. 악어의 눈물에 속지 마세요.


개꼰대는 개과천선하지 않기 때문에 개꼰대입니다.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11화.

커버이미지: Interior with Woman at Piano, Strandgade 30(1901)_Vilhelm Hammershø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