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연재
w.이루다
소모품을 구입할 때 어떤 회사는 ‘소모품’이니 일절 관여하지 않는 반면, 어떤 회사는 연필 한 자루 사는데도 구입 목적을 기재하라고 합니다.
포스트잇, 볼펜, 형광펜, 플러스펜, 클립보드, 자, L자 파일, 결재판, 스카치테이프, 딱풀, 가위 등등. 품목명으로 따지면 한도 끝도 없는 사무용품에 일일이 사유를 붙이는 일이야말로, 너무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결재를 받긴 합니다. 사소한 소모품일지라도 괜히 횡령으로 오해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간혹 어떤 개꼰대는 회사의 예산을 본인의 잔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말에 차년도 소모품을 미리 구입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사무처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산 부서에서 제한을 준 것도 아닌데, 개꼰대가 소모품을 3개 이상 사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더라고요.
제가 업무상 많이 사용하는 물품은 못해도 5~10개를 구입해야 한다고 하니, “이루다 씨가 무슨 일이 그렇게 많다고 그래?”라거나 “매일 야근하는 기획팀이나 총무팀도 그 정도는 안 사. 누가 알면 욕해~”하면서 끝까지 거절했어요.
결국 우리 팀만 나중에 소모품이 부족해 다른 부서에서 빌려오고는 했습니다. 빌릴 때마다, “그 부서는 작년에 소모품 안 샀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요.
또 한 번은, 부서의 연례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함께 사업을 진행한 대학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날이었습니다. 애초에 부서 운영비가 많지도 않아서 저는 법카를 쓸 생각도 없었는데요, 웬일로 개꼰대가 법카로 애들 맛있는 거 사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요 앞에 김밥천국 있잖아~ 메뉴도 다양하고, 맛있더라.
정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예전에 국가대표 회식을 김치찌개로 해서, 해당 스포츠협회가 전 국민에게 원성을 샀던 일이 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와, 진짜더라고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던 거예요.
일단 법카를 받고, 그냥 제 개카로 학생들과 파스타 먹으러 갔습니다. 제가 월급 사정이 넉넉했더라면 스테이크라도 썰게 해 줬을 텐데, 스테이크 샐러드로 대신한 게 아쉬울 뿐이죠.
아, 물론 김치찌개와 김밥천국을 비하하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김밥천국이나 김치찌개와 같은 메뉴는 평상시에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의미로 말한 겁니다.
또 법카라고 무조건 비싼 걸 먹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법카 사용처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법카를 쓰겠다는 생각은 염두에도 없었어요.
‘대접’이잖아요, 대접. 회사에 내빈이 방문하면 한식 코스 요리, 혹은 방이 있는 중식 레스토랑이나 일식 레스토랑 등 고급 요리로 귀하게 모시는데, 왜 열심히 일한 대학생들은 대접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하는 말이에요.
어리다고 음식 맛을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어리니까 싸고 양 많으면 됐다고 생각하세요? 죄송한데, 당신이 그저 개꼰대인 겁니다.
그래 놓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마치 자신이 크게 한 턱 쏘기라도 한 양 으스대면서, “맛있게 먹었지~?” 묻는데 그 순간만큼은 표정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제 개인 카드로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고, 법인 카드로는 후식으로 커피 사 마셨다고요.
그때 개꼰대의 반응을 직접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았을 겁니다. 본인도 민망한 건 아는지 저한테 뭐라 말은 못 하고, 째려보면서 “허, 참.”, “참나.”, “허!” 퇴근 때까지 그러고 있더라고요. 마우스와 키보드를 책상에 쾅쾅 내려찍는 건 기본이고.
개꼰대와 개꼰대 회사가 얼마나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화나고, 어이없는 순간 중 하나가 인력 감축으로 인한 예산 축소를 ‘실적’으로 내세운다는 점입니다.
연간 실적 보고서에 구조 조정 등으로 인한 인건비 삭감을 “올해는 예산을 많이 절약했다.”라고 돌려서 말하는 건 양반입니다. 어떤 회사는요, 당황스러울 정도로 대놓고 실적 보고서에 쓰여 있더라고요.
조직 내 정원을 15% 감축하는 등 조직과 인사를 혁신하였다.
처음에 이 문구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을 잘라낸 게 혁신이라뇨? 15%나 직원이 줄었으면 15%의 업무량이 같이 줄었을까요? 아니죠, 우리 모두 알고 있죠. 남아 있는 직원의 업무량이 늘어났을 거라는 사실을요.
인원 감축이 실적이라면, 그 회사가 얼마나 사람을 우습게 알고, 사람을 쉽게 갈아 쓰고 있다는 건지 스스로 증명하는 꼴 아닌가요?
나를 일하는 사람이 아닌, 돈이나 까먹는 소모품 취급하는 회사와 개꼰대. 막상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상상 이상으로 많습니다. 아니, 제가 일하면서 업무적으로 만난 인간의 대부분이 그랬어요. 그러니 저도 꼰대이면서 인간 혐오가 생길 수밖에요.
제가 이 글에서 뭐, 대단히 사회적인 비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제 분수를 잘 알고 있고, 우주의 먼지도 못 되는 작고 하찮은 존재가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봤자 이미 다수의 개꼰대로 이루어진 세상이 잘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아요.
다만 처음에 말한 것처럼― 바뀌지 않아도, 그래도 알고는 있으시라고요. 본인이 개꼰대라는 걸요.
이런 말, 들어봤거나 해본 사람도 있으실 겁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
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인류 모두가 알고 있어요. 지구상에 인간이란 생명체 수는 사회악으로 느껴질 정도로 많아요.
하지만 ‘나’와 ‘너’는 한 명입니다. 세상에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1명, 내가 ‘너’라고 지칭하는 것도 1명이죠. 10명의 사람을 모두 너너너너너너너너너너라고 일일이 부르지는 않으니까요. 딱 1명을 부를 때만 ‘너’라는 지칭 대명사를 쓰죠.
그러니까 당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수많은 인간 중에서 딱 한 명이라는 겁니다. 너 아니어도 된다는 말을 무슨 의미로 하는지는 알겠고, 또 정말 그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이상하고 짜증 나는 상대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도 조심 좀 하자고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세요. 나 자신이 소중한 건, 너 하나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모두 ‘나’로서, ‘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어요. 내가 아닌 다른 ‘나’들도 전부 너와는 대체할 수 없는 ‘나’예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를 소모품 취급하면서 무시하지 마세요.
무시해야 할 건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돈이죠. 전, 사람을 돈으로 저울질하는 것만큼 천박한 짓은 없다고 생각해요. 예산 아끼겠다고 관리 소홀히 하면 반드시 안전사고가 크게 나죠. 돈 아끼자고 사람 소홀히 하면 결국 사람에게 피해가 오는 겁니다.
사람을 아까워하세요.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12화.
커버이미지: Golden Rule(1961)_Norman Rock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