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화. 숫자는 어차피 많아집니다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연재

by 이루다

w.이루다




20대에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그랬고, 직업 특성상 대학생을 포함한 여러 청년들과 함께 일할 때도 그랬고. 제가 들었던 숱한 지적질 중에서 어처구니없는 것 중의 하나가, “왜 애들한테 존댓말 해?”였습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는 존댓말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나요? 반말 안 해서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요? 도대체 뭐가 못마땅했던 걸까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어른이 처음 보는데도 다짜고짜 반말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귀여움의 표현이라거나 친근함의 표시로 하는 말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어리니까 무조건 어른 말을 들어야지, 하는 강압적인 태도가 싫었던 거죠. 어려서 뭣도 모른다며 무시당하는 것도 싫었고요. 그래서 나는 절대 아이들한테 반말하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 결심했고, 지금까지 제 철칙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중·고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면 정작 아이들은 저를 무척 좋아하고 따르는 반면, 윗사람들은 꼭 제게 한마디씩 하더군요. 아이들을 어른 취급한다고요. 어른 취급한 적 없고요, 단지 존댓말만 한 겁니다. 한 인격체로서 대우하는 거지, 미성년을 성애적으로 보는 징그러운 시각을 가진 게 아니라고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심지어 대학생은 어엿한 성인인데도 제가 ‘00 씨’라고 이름을 부르면서 존댓말을 하는 게 이상하다고까지 했습니다.


“왜 학생이라고 안 하고 ‘00 씨’라고 해? ‘00 씨’라고 부르는 건 연인 사이에나 그런 거지~ 그리고 꼬박꼬박 존댓말 하는 것도, 좀 이상하네.”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지금까지도 의문입니다. 대학생 성인을 학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면 남사스러운 건가요? 나이와 상관없이 존댓말을 하면 정 없고 이상한가요? 여러분들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학생이라는 대명사보다 고유명사인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 어리다고 반말하지 않고 존댓말을 쓰는 것.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대학생 청년들도 말하더군요. 자신들한테 존댓말을 사용하는 직원은 저밖에 없다고요. 그래서 그게 너무 감사하고, 좋았다고요.


사람들은 왜 본인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반말하고, 정말로 어린 사람―어리숙하고, 어리석고, 미성숙한―으로 취급하는 걸까요? 나이와는 상관없이 한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바라봐 주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어요. 평생 그 나이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아, 혹시 몰라 말하는데 여기서의 어린 사람은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미성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존댓말 한다고 소아성애가 아니라고요, 제 말 알아듣고 계시죠?


이렇게 말하니 제가 꼰대가 아니라고 오해할까 드리는 말씀인데, 꼰대 맞습니다. 저는 제 가치관을 꺾지 않고, 고집도 세거든요. 겉으로는 남의 말에 공감하면서 속으로는 전혀 딴판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저 또한 때때로 젊은 친구들을 보며 ‘라떼는 안 저랬는데….’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내가 당하는 건 그토록 싫어했으면서 확실히 어리긴 어리다며 무시하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표현하거나 드러내지는 않아요. 그게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그냥 꼰대는요, 말 그대로 내가 꼰대인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요. 개꼰대는요, 꼰대라는 소리를 어지간히 듣기 싫어하고 절대 꼰대가 아니라고 우겨요.


그냥 꼰대 : 나는 꼰대야.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는 않아. 그래도 네 말을 들어줄 수는 있어.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니까.
개꼰대 : 나는 절대 꼰대가 아니야. 너도 나이 들면 생각이 바뀔걸? 나이 들면 내 말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전 인류가 알고 있습니다. 젊은이에게 충고하던 개꼰대의 나이도 언젠가는 젊은이가 따라잡아요. 숫자는 어차피 계속해서 많아지니까. 문제는 그 높은 숫자가 되어서도, 내세울 게 나이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개꼰대의 특징입니다. 어린 친구들, 젊은 사람의 말을 아예 듣지를 않아요. 그러면서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대접만 받고 싶어 하죠. 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상대를 누가 귀하게 대접하고 싶을까요?


인간은 모두 인간입니다. 태어났기에 살아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이미 거대한데, 고작 숫자라는 작은 개념에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래요. 제 꼰대적 마인드는 저라는 사람에게 축적되어 온 경험치와 가치관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지, 매년 바뀌는 아라비아 숫자가 어떻게 저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나이가 권위인 사람이 되지는 맙시다.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03화.

커버이미지: Golconde(1953)_Rene Magri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