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연재
w. 이루다
꼰대에다 유교휴먼이기까지 한 저는 가끔 최신 유행한다는 것들을 보고 ‘잉?’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특정 신체 부위가 훤히 드러나는 걸치나 마나 한 헐거운 민소매를 입고 러닝 하는 사람이나, 민감 신체 모양이 훤히 드러나는 레깅스에 크롭티 차림으로 길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며, 여전히 적응하지 못해 당황합니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저의 ‘취향’ 일뿐이지, 저와 다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거나 욕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오…’ 놀라거나, ‘나는 저렇게 못 입는데.’ 속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죠.
저는 개인적으로 노출 심한 옷을 선호하지 않아서, 여름에도 주변에서 답답할 만큼 정갈하게 차려입는 편인데요. 꼭 한 마디씩 하더라고요. “안 더워?”, “왜 치마 안 입어?”.
죄송한데, 무슨 상관이세요?
치마보다 바지가 편해서 입는 거고, 노출을 싫어하는 ‘취향’이라서 그런 건데 제가 입는 옷까지 당신들의 기준에 맞춰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장례식장에 웨딩드레스 입고 가지만 않으면 되지. 어차피 저도 꼰대라서 TPO 정도는 철저하게 지킨다고요. 더워서 죽어도 제가 죽습니다. 보기만 하는 당신들은 안 죽어요.
이렇다 보니, 위에서 말한 저와 취향이 다른 사람들을 제가 몹시 싫어할 거라고 단정 짓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유교휴먼에 개꼰대이기까지 한 그들은 동조해 주기를 바라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가슴골이 다 보이는 저런 옷은 좀 아니지 않아?
조용한 곳에서 또각또각 구두 소리 내면서 걷는 거 너무 듣기 싫어.
지저분하게 머리는 왜 저렇게 기르고, 수염은 왜 안 깎아?
개꼰대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알면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아닌 변화하는 사람을 탓하는 말을 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그럴 기운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대체하고 싶네요. 남이사.
가슴골이 보이는 옷이 취향이니까 입었겠죠. 운동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구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요, 머리 기르고 수염 안 깎는 사람이 지저분하면 민머리나 수염을 레이저 제모한 사람은 전부 결벽증이게요?
노출이 심한 옷, 유난히 큰 구두 소리, ‘비교적’ 단정하지 못한 스타일 등이 개인적으로 불편할 수는 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과 성향과 가치관이 모두 다르니 누군가에게는 예쁘고 귀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추하고 볼품없게 느껴지기도 하겠죠. 문제는 제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는 편협된 사고에서 시작됩니다.
개꼰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 세상은 정말 이상합니다. 개꼰대가 바라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 잘못된 거고, 개꼰대의 주장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 틀려먹은 겁니다.
그러니 개꼰대에게는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젊은 애들은 왜들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저밖에 모르는지, 나라 꼴은 왜 이 모양인지, 불쾌하고 화나고 억울한 일투성이죠. 정작 그 개꼰대를 상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불쾌하고 화나고 억울한데 말입니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간에 끼인 꼰대인 저도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상종하기도 싫고,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아예 인간 취급도 해주기 싫을 만큼 혐오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진심으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문득 치솟을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합니다. 나와 다른 것이 너무도 당연한 한 인간을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는 것 같지만서도… 그럼에도 노력을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혐오하는 것만큼 나를 혐오하는 인간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꼰대인 걸 아는 꼰대인 저는, 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압니다. 개꼰대는 그 사실을 모르더라고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기는 합니다. 나 자신을 검열하는 것보다 남을 손가락질 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요. 하지만 원래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대충, 편한 대로, 익숙함에 길들어서는 사고하고 사유하는 행위를 멈추지는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살아온 인생이 어떤 형태였는지. 잘 살아왔는지, 나 스스로 만족스러웠는지. 저는 죽는 그 순간까지 온통 이해하지 못할 것들 투성이로 불만과 불평이 끊이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잘 살다가 잘 죽고 싶어요.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진리 같은 건 없습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세상이 변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시대의 중심에서 밀려난 세대가 되었을 때 한 번쯤은 고민해 보세요.
세상이 이토록 변했는데, 왜 나는 변하지 않았는가 하고요.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04화.
커버이미지: The Sun(1909)_Edvard Mu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