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연재
w.이루다
막차 끊겨서 택시 타고 퇴근하신 적 있나요? 첫 차 타고 퇴근하신 적은요? 그렇게 퇴근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씻고 옷만 갈아입은 채 다시 출근하신 날도 있으신가요?
세 경험이 모두 없다면야 정말 다행이지만, 세 경험을 모두 해보신 분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저처럼요.
내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다 빼앗기고 집에 오면 밥은커녕 샤워할 기운도 없이 쓰러져서 1, 2시간 정도 자다가 일어나 겨우 씻고 다시 잠드는 하루.
퇴근하면서도 내일 해야 할 업무 때문에 출근하기 싫어 스트레스를 받고, 출근길에는 ‘사고가 나서 다쳤으면 좋겠다.’며 응급실에 실려 가면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망상하는 일상.
어떠세요? 좋아 보이나요? 이게 삶인가요?
내 시간과 인생 자체가 사라진 일상을 지내다 보면, 몸은 자꾸 아프고 정신도 병들어서 ‘이럴 거면 왜 사나.’, ‘죽고 싶다.’ 죽어도 별로 아쉽지 않을 것 같은 위험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사람들이 농담인 줄 아는데, 진심으로 물만 마셔도 체했어요. 뭘 좀 먹었다 싶으면 구토하거나 배탈이 나거나. 그러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눈앞이 샛노래져 아무것도 안 보이더니 숨이 안 쉬어지고. 그 지경까지 갔었습니다, 제가.
그때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 있어요.
그래도 업무적으로 많이 성장했잖아.
예, 그렇게까지 일하는데 업무 능력이 발전하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업무적으로 성장할래, 건강할래,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저는 무조건 건강을 택할 겁니다. 업무적 성장이야 천천히 이뤄나갈 수 있다지만 건강은요, 한 번 잃어보니까 어느 정도 회복은 될지언정 잃기 전으로 돌아오지는 않더라고요.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까지 버텨야 할 회사 같은 게 있는 걸까요? 반박하시는 분들 있겠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로요, 그렇게 일하다가 죽어요.
이제 저는 ‘안 하고, 안 받자.’ 주의가 되었는데요, 무슨 말이냐. 일이든 야근이든 뭐든 다 필요 없다고요, 안 하고 돈도 안 받겠다고요. 돈과 내 건강을 바꾸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요.
그랬더니 또 자주 듣는 말이 뭘까요?
이루다 씨는 돈 욕심 없나 보다. 집이 부자인가~
야근하는 걸 한 번을 못 보네~ 일이 없나~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버텨져? 1.5배잖아, 왜 안 해?
일단 부자면 그 회사 안 다녔겠죠. 진짜 필요하다면 야근해요, 야근에 트라우마 있어서 어떻게든 업무 시간 내에 일을 다 끝내는 거고요. 1.5배라며 일도 없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쇼핑하고 시간만 채우다 돈 벌어가는 것보다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 겁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칼퇴하지는 않습니다. 업무 중에 담배 피우러 나가서 20분 비우고, 커피 마시러 나가서 20분 비우는 시간 등을 최대한 아껴 절대 야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제시간에 업무를 끝내는 것뿐이죠.
제가 제 할 일 하면서 야근이나 추가 근무하지 않겠다는 건데도 저를 못마땅해하더라고요. 일 욕심 없다, 돈 욕심 없다면서요.
일 욕심 없고, 돈 욕심 없는 게 나쁜 건가요? 사실 저도 꼰대이기는 해서, 일과 삶이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다거나 일보다 개인적인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워라밸의 중요성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개꼰대들은 이상하리만치 워라밸을 싫어하더라고요? 왜일까요?
물론 일반화할 수 없고 일반화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만났던 개꼰대들은 하나같이 ‘회사가 곧 인생(회사=인생)’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주지며, 인간관계며, 취미며, 휴일이며 전부 회사와 관련되어 있더라고요.
그러니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 젊은이들, 회사 야유회·체육대회·워크숍 등을 달가워하지 않는 요즘 애들을 뒤에서 어마어마하게 욕하면서 말합니다. “군기가 빠졌어.”
회사는 일하러 가는 곳이니 일만 제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어쩌다 운이 좋아 성향이 잘 맞고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면 즐겁고 신나는 회사 생활이 될 수 있겠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는 겁니다.
나에게 회사가 너무 좋은 곳이라면 네, 뭐, 다행인 거죠. 축하드려요. 하지만 나에게 잘 맞는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는 최악일 수도 있습니다. 그걸 이렇게 좋은 곳에 적응하지 못한다며, 군기가 빠졌다며, 배부른 소리 한다며 욕할 자격? 아무도 당신한테 준 적 없어요.
‘나는 이런데 너는 왜 그래?’라며 나와 생각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을, 나와 생각이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숙덕거리고 있지는 않나요?
주의하세요. 개꼰대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겁니다. 내 말만이 맞다 우기고 내 생각과 내 의견만이 옳은 모습이고 정상인 거라며, 누군가의 다름과 개성을 인정하지 않기 시작한 거예요.
나는 야근하는데 쟤는 안 하네?
→ 쟤가 일 처리가 빠른 건 아닐까요?
나는 야근할 정도로 일이 많은데 쟤는 한가하네?
→ 불만이면 인사 담당자나 상급자에게 직접 찾아가 말하세요.
만약 진짜로 심각하게 일을 안 해서 문제가 되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나뿐만 아닌 회사 사람들 전부 다 알고 알게 돼요. 그런 사람은 언젠가 큰 실수 혹은 사고가 나게 되어있고요, 굳이 내가 성내지 않아도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고요.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인 보복이나 복수라도 할 건 아니잖아요? 아쉽게도 저는 복수할 시간, 에너지, 능력이 있지도 않아서요. 저 하나 돌보기에도 벅차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진짜 업무량이 많아서 야근에 시달리고 내 일만 하기 바쁜 사람들은요, 누군가 일이 없어 놀고 있다는 걸 알아도 거기에 신경 곤두세우고 화낼 시간과 여력조차 없어요.
개꼰대 빙의해서 말해볼게요.
할 일 더럽게 없으신가 봐요? 심심하면 일 드려요?
[죄송한데, 완전 꼰대세요] 시리즈 05화.
커버이미지: The Gleaners(1857)_Jean-François Mill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