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진화하고 있는가?

by Hwan

Lucy는 액션 영화의 외형을 입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 존재와 인식의 끝에 대한 깊은 질문이 자리한다. 단순히 뇌의 사용률이 100%에 도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인간이 지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였을 때 어떤 존재로 변모하게 되는가를 묻는다.


평범한 대학생 루시는 뜻하지 않게 마약 조직에 휘말리고 몸속에 이식된 신종 약물이 유출되면서 뇌의 사용률이 점차 증가한다. 뇌의 잠재력이 열릴수록 그녀는 초 지각, 시간의 조작, 물질의 통제를 넘나드는 존재로 진화해 간다.


영화는 뇌의 사용률이라는 과학적 신화를 철학적 상징으로 바꾸어 놓는다. 루시가 점점 더 많은 뇌를 활용하게 될수록 그녀는 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인간이라는 형태에서 멀어진다. 기억은 완벽해지고 시간은 상대화 되며 감정은 사라진다.


영화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인간이 지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였을 때 결국 도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연장’이 아니라 ‘자신의 소멸’ 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루시는 더 이상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않는다. 사랑도 욕망도 없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감정들이 하나씩 소거된다. 그 끝에 남은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루시는 결국 육체도 언어도 필요 없는 순수한 ‘존재’로 확장된다. 그 과정은 진화라기보다는 하나의 소멸처럼 보인다. 자아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직 우주의 데이터에 녹아든 의식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자아는 우주의 일부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기술의 발전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똑똑해지는 것이 곧 더 행복해지는 길인가? 더 많은 것을 아는 것이 곧 더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 루시는 말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존재 그 자체’로 남는다.


루시는 말한다. “시간만이 진정한 존재다.” 인간은 시간속에서 태어나고 기억하고 죽는다. 기술은 모든 것을 넘어서도 시간만큼은 넘어서지 못한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유한함이야말로 인간됨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지식의 끝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루시는 그 경계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진화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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